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도현(이도현)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02321
  • 전몰일자 : 19501201

공훈사항

이도현 일병은 경상북도 대구광역시 비산동에서 1924년 11월 19일에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일병은 1950년 6월경 입대 후 카투사로 선발되어 미 제8군으로 전입되었다가 육군의 부대조정에 따라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의 부대 전입 당시 제8사단은 낙동강 전선에서 국군 총반격을 개시하여 1950년 10월 8일 38도선을 통과하여 북한지역 깊숙이 진출하였지만 1950년 11월 9일 중공군의 참전으로 대대적인 공세에 직면해 있었다.
이에 제8사단은 묘향산 동쪽의 영원과 맹산 지역에서 방어 태세를 강화하여 중공군 제42군의 공격을 저지하고자 하였다. 유엔군사령부는 중공군의 제1차 공세가 끝나고 소강상태가 지속되자 중공군이 또다시 조직적인 공격을 가해오기 이전에 전쟁을 종결시키는 계획을 수립해 1950년 11월 24일 총공세를 단행했다. 그중 제8사단은 형제봉-관리 전투에 참가하여 대규모의 중공군과 격전을 벌였으나 진지의 일부를 잃고 맹산 북쪽의 소가래봉으로 탈출했다. 탈출을 완료한 제8사단은 매재령의 차단 진지를 돌파한 후 북창을 경유해 가창으로 철수하기에 이른다.
이때 맹산이 위협받게 되어 제8사단은 측방으로 침투하는 중공군을 저지하기 위해 지연전을 펼쳤다. 그 결과 제8사단은 제2군단의 집결지인 평양 동쪽의 삼동에서 38도선을 향해 철수했고 율리, 수안, 신계, 시변리를 경유하여 토산을 향하여 진격했다.
이후 제8사단은 1950년 11월 27일까지 중공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또 한 번의 방어 전투를 실시했다. 중공군은 제126사단을 동부 산악지대로 우회시켜 맹산 동북쪽 애창천 계곡, 즉 사단의 배후로 침투시켰다. 하지만 수색 정찰로 이를 확인한 제8사단은 연대의 애창 방어진지를 우회하여 맹산에 집결한 중공군과 교전하였고 그 결과 중공군과 제8사단 모두 일부 병력이 분산되었다.
이후 맹산이 위협을 받자, 제8사단은 영원 지역에서 철수하여 측방에서 침투하는 중공군을 저지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 일병은 1950년 12월 1일 전투 중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도현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3판-39면-21665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9-ㅎ-04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