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도재(李度宰)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20803

공훈사항

이도재 경사는 1931년 2월 23일 전북 무주군 안성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전북도경 무주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무주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기습남침을 감행하자 전북도경은 비상경비체제로 전환하고 도내 관할 경찰관서로 하여금 전투태세에 돌입하도록 했다. 부안경찰은 부안-군산, 부안-김제를 잇는 주요 도로 통제, 주요 시설 경비,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7월 20일 전주가 적의 수중에 들어가자 7월 21일 남원에 집결한 전북도경과 전북 북부지역 경찰은 임실 방면에서 남하하는 북한군에 대비하기 위해 육군부대와 합동 방어태세를 갖추고, 남원시 운봉면에 진출한 함양경찰 병력과 합세하여 육십령 고개에 차단진지를 구축했다. 육십령의 전북·경남부대의 저지선은 1개 연대규모의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무너져 일부는 안의로 후퇴하고, 일부는 산복에서 저항을 계속했다. 7월 30일 진주가 포위되어 경찰 1,000여 명과 군병력 1,000여 명은 7월 31일 의령으로 철수했다. 합천으로 집결한 충남·서울·전북의 경찰병력은 일부는 고령으로, 일부는 창녕으로 낙동강 동안으로 이동했으며, 의령의 경남·전남병력은 함안-마산으로 철수하여 낙동강 방어작전에 일역을 맡게 되었다. 고령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방어작전에 임하고 있던 무주경찰은 8월 4일 함안으로 후퇴하여 낙동강 방어작전에 임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9월 16일 국군·유엔군의 반격작전이 개시되자 각 도(道) 경찰도 경찰관서 수복작전에 나섰다. 무주경찰은 10월 1일 무주경찰서를 수복하고 지역 내 치안을 유지하며 잔적소탕작전을 실시했다. 치안국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공비섬멸 작전기간(1차: 1951.3.10-4.10, 2차: 1951.4.15-5.5, 3차: 1951.7.15.-8.15)을 설정하여 전국적으로 공비섬멸을 하도록 했다. 이 경사는 제1차-제3차 공비섬멸작전에 참가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이어서 이 경사는 서남지구 전투부대에 편성되어 공비토벌작전(제1기: 1951.12.1.-12.14, 제2기: 1951.12.16.-1952.1.4, 제3기: 1952.1.5.-1.31, 제4기 1952.2.4.-3.14)에 참가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이 작전 후 이 경사는 무주경찰서에 복귀하여 치안유지활동에 전념했다. 그러던 중 8월 3일 무주 안성면에서 공비들이 준동한다는 정보에 따라 무주경찰이 출동하여 곧바로 공비들과 전투가 벌어졌다. 이 경사는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공비들을 소탕하다가 적 쏜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도재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8-ㅂ-01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