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도원(李道源)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604747
  • 전몰일자 : 19530723

공훈사항

이도원 일등중사는 서울시 서대문구 대현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인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3월 29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마친 후 수도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도원 일등중사가 전선에 투입될 무렵 사단은 중공군의 제6차 공세가 시작되어 설악산 부근의 주저항선이 돌파되면서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되고 있었다. 이 일등중사와 사단 병력은 1951년 6월 3일부터 12일까지 향로봉지구 전투를 실시하여 940고지를 점령하였다. 이후 8월 18일부터 23일까지 미 제8군의 작전에 참가하여 서화리 동북방의 924고지를 점령하였다.
이 일등중사가 소속된 사단은 1952년 7월 8일 지형능선을 공격해 점령했으나 북한군의 역습을 받아 물러났다. 전선은 7월과 8월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에서 각각 한 차례씩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전개되었다. 9월 6일 북한군은 맹렬한 공격준비사격을 가한 후 고지 좌우측 계곡으로 공격해 왔다. 이에 이 일등중사를 비롯한 장병들은 최후까지 분전했음에도 수도고지를 함락당하였으나 공군의 근접지원과 포병의 지원 아래 공격을 개시하였고 재차 고지를 향해 돌진해 고지를 점령하였다.
1953년 초, 휴전회담이 여전히 중단된 상황에서 전선은 소강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도원 일등중사와 사단 병력은 1953년 5월 14~16일 금성 서남쪽 7㎞ 지점 직목동 일대에 있는 샛별고지(470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하였다.
이후 휴전이 임박했던 1953년 7월, 금성지역 북방의 중공군은 6·25전쟁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었다는 사실을 세계에 과시하려는 정치적 목적과 중부 전선에 돌출되어있는 한국군 전선으로부터의 위협을 제거할 목적으로, 중공군 4개 군 산하 12개 사단의 병력을 동원하여 이도원 일등중사와 연대병력이 방어하고 있던 금성지역의 돌출부에 대한 공세를 감행하였다.
이 일등중사는 수도고지-지형능선전투 등 김화 및 금성 지구의 고지쟁탈전에서 모범을 보이며 앞장서서 솔선수범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도원 일등중사는 1953년 7월 23일 김화 지구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도원 일등중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06775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8-ㅍ-06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