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도원(李道遠)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7903610
  • 전몰일자 : 19500625(제8연대 제2대대가 실제 교전을 한 6월 28일 전사한 것으로 추정됨.)

공훈사항

이도원 일병은 경상북도 문경군 용암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과 자유를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9년 7월경 홍천지역의 38도선 방어를 맡고 있던 제6사단 제8연대에 입대했다.
이 무렵 38도선 일대에서는 북한군의 도발이 계속되고 있었다. 1949년 말부터 북한의 남침징후가 높아짐에 따라 육군본부는 경계강화 지시를 수차례에 걸쳐 거듭 하달했고, 제6사단도 지속해서 경계를 강화했다. 이 일병은 유사시 조국을 반드시 수호하겠다는 의지와 사명감으로 경계임무에 적극 임했다.
제8연대는 6·25전쟁 발발 불과 5일 전인 1950년 6월 20일 제2연대에 38도선 경계진지를 인계하고 서울로 이동하여 수도경비사령부로 예속되었고, 이동한 지 이틀 만에 전쟁을 맞았다. 전쟁이 발발하자 이 일병이 소속된 제8연대 제2대대는 6월 25일 흑석동-노량진 일대의 한강 변에 배치되어 한강교를 폭격하는 북한군 전투기 1대를 기관총 사격으로 격추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대대는 26일 제7사단과 제6사단 간의 방어지대의 간격을 엄호하기 위해 가평 일대로 출동했다. 그러나 북한군이 의정부를 점령하고, 서울이 위급하게 되자 다시 복귀하여 27일 미아리방어선인 회기동의 143고지에 투입되어 서울 방어에 임했다. 이때 대대(-)는 143고지에 배치되었고, 제5중대는 중랑교 남쪽 무명고지에 추진 배치되었다.
28일 이른 아침 북한군은 약 10분 동안의 공격준비사격 후에 공격을 가해 왔다. 이때는 북한군이 이미 미아리 방어선을 돌파하고 서울 시내에 속속 진입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울 외곽에서 싸우고 있는 부대는 대대뿐이었다. 이 일병과 대대 장병은 고립된 가운데서도 세 차례에 걸친 북한군의 파상적인 공격을 진전에서 격멸하고 진지를 지켜냈다. 그러나 마침내 탄약이 바닥나고 상급부대와도 연락이 끊긴 상태에서 서울 시내 곳곳에서 전차 소리와 총성이 울려 퍼지자, 대대는 어쩔 수 없이 광나루로 철수하여 한강을 건너 수원으로 이동했다. 이날 전투에서 이 일병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싸우다 안타깝게도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도원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6판-2면-23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7-ㅁ-06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