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도영(李都泳)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8674
  • 전몰일자 : 19500825

공훈사항

이도영 일병은 경상남도 거제군 장승포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1948년에 수립되었음에도 정치 및 사회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던 1949년 10월 중순, 서울 용산의 제19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에 배치되었다. 이후 연대는 1950년 4월 19일부로 제6사단에 예속되면서 원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연대는 교육훈련과 부대정비에 주력하고 있었다.
북한군이 6월 25일 새벽 기습남침을 감행했을 때, 이도영 일병이 소속된 제19연대의 주력은 원주에서 기차로 출발하여 청량리를 거쳐 6월 26일 새벽 5시에 춘천에 도착했다. 연대는 제7연대를 증원하여 춘천지역의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6월 27일에 홍천으로 이동하여 제2연대를 증원하여 북한군의 진출을 지연시킨 후 6월 30일 오후에 원주로 철수했다.
이도영 일병이 소속된 제19연대는 7월 1일 야간에 이천지역으로 긴급히 투입되어 북한군의 진출을 저지한 후 7월 4일에 진천으로, 7월 9일에 수안보로 이동하여 사단에 합류했다. 이후 제6사단은 7월 12일 조령과 이화령을 포함한 문경-점촌-함창 축선에서 북한군 제1, 제13사단을 맞아 7월 31일까지 지연전을 실시했다. 그리고 8월 1일 새벽에 낙동강을 건너 용기동 북쪽 2km 지점 양곡동 일대의 능선에 배치되었다. 이곳에서 적의 공격을 몇 번은 격퇴했으나, 8월 6일에 진지에서 후퇴하여 선돌주막 남쪽의 236고지로 철수했다.
제19연대는 8월 8일 오전 11시경에 2개 대대 규모의 적이 선돌주막 부근까지 진출할 때에 강렬한 저항으로 격퇴하고, 8월 9일 새벽 3시경에 236고지에서 철수하여 조동과 외곡동 일대를 점령했다. 이곳에서 쌍방 간에는 매일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8월 13일에 군위, 의흥을 거쳐 매봉산과 산운동 일대로 철수했다.
북한군 제1사단은 8월 15일부터 전차로 증강된 보전협동으로 맹렬히 공격했고, 이도영 일병이 소속된 제19연대는 강력히 저항하여 적의 공격을 격퇴했다. 그리고 8월 21일 야간에 민부대와 진지를 교대한 후 사단 예비가 되었다. 그러던 중 연대는 8월 25일에 사단 명령에 의거 공세행동으로 적의 측방을 공격하여 의흥 북쪽의 수북동 고지까지 진출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도영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1판-1면-14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9-ㅁ-06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