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도수(李道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5065
  • 전몰일자 : 19510519

공훈사항

이도수 일병은 경상남도 산청군 신안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 총공세’로 위기에 처했던 1951년 2월경에 제주도 모슬포에 설치된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하고 제2사단 제3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도수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때에 제2사단은 안동-속리산-제천 일대에서 공비소탕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4월 28일부로 미 제9군단에 배속되어 청평 일대의 전방작전지역으로 이동했다. 당시 미 제9군단은 ‘중공군의 4월 공세’를 저지하고 조심스럽게 반격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에 사단은 5월 9일에 가평까지 진출함으로써 ‘중공군 4월 공세’로 상실했던 지역의 절반을 회복했다. 그리고 미 제8군사령부에서는 좀 더 큰 규모의 반격작전을 계획했다. 그러나 5월 10일을 전후하여 공산군의 활동이 현저히 강화되고 새로운 공세 징후들이 포착되어 반격계획을 취소하고 방어로 전환하도록 했다.
제2사단은 가평 일대에서 중공군 공세에 대비하여 방어준비하고 있었다. 예상대로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가 5월 16일부터 시작되었다. 공산군의 작전목적은 주공을 동부 전선으로 지향해 그곳에 집중된 국군을 격멸하여 미군을 고립시킴으로써 향후 유엔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내는데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것이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중공군은 3중으로 국군을 포위 섬멸하는 다중포위전법을 사용하고, 국군 후방의 주보급로를 다중으로 차단했다. 공산군은 그들이 의도했던 국군에 대한 다중포위에 실패하고 곧 공세의 한계에 도달했다.
이도수 일병이 소속된 제32연대 지역으로는 중공군 주력이 공격하지 않았으나, 조공 부대의 공격을 받고 전투는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그는 5월 19일 방어전투에서 적의 공격을 격퇴하기 위해 선두에서 용감히 싸우다가 적의 총탄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도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8판-5면–23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9-ㅌ-01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