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도선(李道先)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5303538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이도선 일병은 전라남도 여수시 충무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1948년 9월 중순경 제5여단 제20연대에 입대했다. 제20연대의 전신은 제4연대로 1946년 2월 15일 창설되어 지리산 일대의 공비소탕작전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48년 5월 4일에 전남 여수에서 제14연대가 창설되었는데, 제14연대는 ‘여순 10·19사건’으로 1948년 11월 20일 해체되었고, 장병들은 제5여단 제4연대로 흡수되었다. 그리고 제4연대는 동일부로 제20연대로 개칭되었고, 제5여단은 1949년 5월 12일부로 사단으로 승격했다. 제20연대는 본부를 송정리에 위치시키고 지리산과 백운산 등지에서 공비소탕 작전을 실시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이 일병이 소속된 제5사단은 육본으로부터 이날 오전 8시에 “제5사단은 12시까지 용산에 도착하도록 이동하라.”는 긴급전문을 받았다. 당시 제20연대는 사단 명에 의거 백운산 일대에서 공비토벌작전 중이었는데 연대는 이를 중지하고 출동준비를 하여 26일 오전에 송정리역에서 서울로 출발했다.
제20연대는 용산역에서 하차하여 26일 야간에 미아리에 도착했다. 연대 장병들은 먼저 도착한 제5사단장의 지시를 받아 미아리에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사단장은 27일 오전 10시에 미아리 103고지를 전방지휘소로 정하고, 부대가 도착하는 대로 미아리 고개 좌측지역의 103고지 및 171고지를 점령하도록 했다.
이도선 일병은 연대 장병들과 함께 적에게 집중사격을 가했고, 적들은 궤도가 벗겨진 전차 1대를 버리고 도주했다. 이날 밤에 빗줄기가 세차게 내리는 가운데, 북한군 전차 40여 대가 재차 공격을 개시하여 미아삼거리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 일병은 장병들과 함께 적 전차가 목교(木橋) 부근에 이르렀을 때 집중사격을 가했으나 적 전차는 아랑곳하지 않고 통과했고, 뒤이어 보병부대가 후속하여 방어 정면을 통과했다. 이날 이도선 일병은 미아리전투에서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웠으나 전투 중에 적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도선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4판-5면-04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79-ㅌ-06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