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도상(李道祥)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217507
  • 전몰일자 : 19520215

공훈사항

이도상 하사는 1928년 4월 9일 경상북도 경주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2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수도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도상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강릉에 방어진지를 강화하면서 1951년 2월 25일부터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속사리 부근으로 투입되었다. 3월 9일 속사리 일대 적 지역을 위력 수색해 북한군을 멀리 구축하였고 3월 26일 제2차로 38도선을 돌파한 후 계속 진격하였다. 4월 15일 한계령-오색리-관모봉을 연하는 선으로 진출하여 주저항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이도상 하사와 연대는 1951년 8월 27일 924고지와 884고지를 점령한 다음 9월 6일에 단행된 군의 전선 조정에 의거 군단 서측의 방어선이 2km 축소됨을 계기로 향로봉-건봉산-까치봉-송현리를 방어하게 됨에 따라 재배치되었다.
동해안으로 이동한 이 하사와 연대병력은 554고지-고황봉-36고지-강정을 연하는 선을 방어하였다. 10월 3일에 351고지(월비산 동쪽 2km)-148고지(고성 동남쪽 3.5km)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준비에 들어갔다. 그들은 10월 12일 오전 6시 월비산 공격을 개시하여 10시간의 격전 끝에 오후 4시경 351고지를 점령한 다음 월비산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전열을 재정비한 북한군이 계속적인 저항을 함에 따라 결국 목표를 점령하지 못하고 351고지로 철수하였다.
1952년 초반까지 쌍방 간에 합의되었던 임시휴전선이 백지화됨에 따라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이도상 하사는 호남지구의 공비토벌 작전에 투입되었다. 사단은 후방지역 공비들의 수가 급속도로 증가하여 후방치안의 확보가 점차 어려워지자 이들을 소탕하기 위하여 1952년 2월부터 백아산, 모후산, 조계산 지구에 대한 소탕 작전과 반복 수색을 전개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던 이도상 하사는 1952년 2월 15일 모후산 부근 공비토벌 작전 임무를 수행하던 중 공비들의 기습사격을 받아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도상 하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2665 육)을 추서하고 유해(30묘역-판-2590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5-ㄱ-09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