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도범(李度範)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501237
  • 전몰일자 : 19530424

공훈사항

이도범 하사는 경상남도 밀양군 부북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과 혈전을 벌이는 위급한 시기에,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일어섰다. 이 하사는 1950년 9월 중순 경남 밀양군 삼랑진에 있는 제6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는 낙동강전선에서 분전하며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는 데 기여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반격을 개시했고, 이때 연대는 경주-문경-충주-서울을 거쳐 10월 8일 양문리에서 38도선을 돌파했다. 연대는 김화-평강-곡산-평양 북방-개천을 거쳐 11월 초 평안남도 개천 동북방의 비호산에서 중공군과 일전을 치른 후 묘향산 남방까지 진출했으나, 중공군의 반격을 받고 단계적으로 철수하여 춘천 부근의 38도선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시작했고, 연대는 철수하여 1951년 1월 8일 영월 북서방에 배치되었다. 이후 5월까지 연대는 영월-평창-하진부리-인제 축선에서 공산군과 공방전을 벌였다. 5월 하순 유엔군은 공세로 전환했고, 연대는 6월 초순 양구 서북방의 군량현 일대에서 적을 물리치고 ‘신 캔자스선’ 상의 마석봉-504고지-757고지를 잇는 선을 확보했다. 연대는 8, 9월 동안 양구군 백석산 남쪽의 917고지와 883고지에서 적과 격전을 치르며 이 고지들을 확보했다. 연대는 9월 26일 백석산을 목표로 공격을 감행했으나, 북한군 제32사단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끝내 고지 탈취에 실패하고, 28일 동 임무를 제8사단에 인계 후 육본 직할로 소속이 변경되어 양구 일대에서 부대정비를 했다.
연대는 11월 20일 다시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백석산 북방의 1,090고지~931고지~암동~319고지를 잇는 제8사단의 전선을 인수했다. 연대는 1,090고지 전방의 전초진지(크리스마스고지)에 대한 적의 3차례에 걸친 공격(제1차: 1951. 12. 25.~28. 제2차: 1952. 2. 11.~13. 제1차: 1952. 10. 6.~13.)을 막아내고 동 고지를 지켜냈다.
이후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연대는 큰 전투가 없는 가운데 방어진지를 보강하면서 위력수색과 매복, 교란작전을 지속했다. 이 하사는 1953년 4월 24일 분대원을 이끌고 적진 교란작전을 수행하던 중 적과 조우하여 교전하다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도범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54-ㅋ-05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