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희(이덕희)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754384
  • 전몰일자 : 19511121

공훈사항

이덕희 일병은 1931년 10월 11일에 서울특별시 중구 인현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한 10월 2일, 경북 신녕의 제6사단으로 현지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수색대로 배치되었다. 수색대는 적진으로 침투하여 적정을 사단에 보고하거나, 적 지휘소 및 탄약고 등을 타격하여 적 후방을 교란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덕희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1월 중순, 제6사단은 선두부대가 압록강 변의 초산까지 진출했으나, 이후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받고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여 전곡-백의리를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중공군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서울을 목표로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시작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평택-삼척 선으로 철수하여 반격을 준비했다. 당시 제6사단은 중공군에 맞섰으나, 중과부적으로 철수하여 1951년 1월 6일에는 장호원 부근의 적산리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제6사단은 2월 12일 시작된 중공군의 2월 공세, 4월 22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4월 공세,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격퇴하고 즉각 반격으로 전환했다. 사단은 5월 25일부터 가평-춘천 사이의 산악지대인 계관산-북배산-지암리 방향으로 공격하여 5월 28일에 구만리(화천)발전소-병풍산을 연하는 선을 확보했다. 이후 사단은 6월 5일부터 백암산에서 화천으로 뻗어 내린 643고지-887고지-992고지-취봉 방향으로 공격하여 6월 10일에 적근산-백암산 선까지 확보했다. 이후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공산군이 휴전협상을 지연하면서 군사력 증강에만 집중하자, 유엔군사령부는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예하 부대에 공세적인 행동을 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제6사단은 8월 31일에 백암산 방어진지 전방에 위치한 819고지-462고지를 탈취했고, 10월 13일부터 21일까지 금성천을 감제하는 교암산(770고지)을 공격하여 탈취했다. 이후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이덕희 일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적진에서 적에 관한 정보수집 활동을 하던 중 11월 21일에 적에게 발견되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희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39면-2165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6-ㅁ-06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