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훈(李德勳)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146063
  • 전몰일자 : 19501126

공훈사항

이덕훈 하사는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이 하사는 1950년 9월 9일에 입대한 후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가 부대에 전입할 무렵, 제8사단은 9월 초 북한군의 막강한 화력에 직면하여 영천 읍으로 철수하게 되었으며, 읍내에서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게 되었다. 곧이어 국군 제1사단과 제6사단의 증원부대가 도착해 전세가 역전되어, 국군이 북한군 제15사단을 포위하게 되었다.
제8사단 장병들은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한 후 9월 8일 영천군의 탈환을 시작으로, 북진과 반격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국군은 1950년 9월 16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이어 낙동강에서 국군 총반격작전을 실시했다. 이에 제8사단은 정비를 완료하고 1950년 9월 20일 작전에 합류해 제2군단의 우익부대로서 정면의 적을 압도하며 진격을 거듭하였다. 제8사단은 1950년 9월 21일 적 1개 연대에 대하여 공격을 실시하였다. 피아간에 치열한 전투 끝에 북한군은 분산되어 패주하였고 1950년 10월 3일 양평지구의 적을 격파하여 적의 저항을 받지 않고 빠른 속도로 서울에 도달했다.
10월 8일에는 연천 남방에 도달해 적 1개 대대를 격파하여 철원을 점령하였다. 10월 15일에는 곡산지구를 장악, 일대의 잔적을 소탕한 후 석봉을 향해 진격하였다. 제8사단은 끊임없이 북진하여 1950년 11월 9일 덕천을 탈환하고 구장으로 진출해 초산으로부터 철수하는 제7연대에 대한 엄호에 임하였다.
중공군이 개입해 적의 진격을 저지하고자 하였으나 계속 증강되는 적에 지연전을 펼치며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제8사단은 1950년 11월 27일까지 중공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또 한 번의 방어 전투를 실시했다. 중공군은 제126사단을 동부 산악지대로 우회시켜 맹산 동북쪽 애창천 계곡, 즉 사단의 배후로 침투시켰다.
하지만 수색 정찰로 이를 확인한 제8사단은 연대의 애창 방어진지를 우회하여 맹산에 집결한 중공군과 교전하였고 그 결과 중공군과 제8사단 모두 일부 병력이 분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 하사는 1950년 11월 26일 전투 중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훈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03판-2면-05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9-ㄱ-073)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