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호(李德浩)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397969
  • 전몰일자 : 19530717

공훈사항

이덕호 일병은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3년 1월 23일 육군에 입대하여 간단한 기초군사 훈련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 기갑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덕호 일병이 전선에 투입될 당시 휴전회담이 여전히 중단된 상황에서 전선은 소강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1953년 1~2월에는 전력증강과 진지공사에 주력하고 있었다. 정적을 깨고 중공군은 5월 12일 689고지(텍사스고지) 공격을 시작으로 5월 13일부터 금성돌출부 정면의 전초진지에 대해 공격을 가해 왔다. 중공군의 대규모 기습공격을 받은 국군은 금성 돌출부 양견부가 돌파되었으며, 후방의 지휘소가 기습을 받는 등 혼란이 야기되어 이 일병과 장병들은 금성천 남쪽의 백암산과 주파령, 적근산 부근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이덕호 일병과 장병들은 6월까지 금성돌출부 서측의 번개고지, 샛별고지, 무명고지 전투를 수행한 후, 7월 13일부터 금성 지구에서 중공군을 맞아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 이 전투는 1953년 7월 금성지역 북방에 위치한 중공군이 5개 군 13개 사단을 동원하여 국군 4개 사단 즉 수도, 제6, 제8, 제3사단이 방어하고 있는 금성지역의 돌출부에 대한 최후공세를 감행한 전투이다. 이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7월 14일부터 반격작전을 전개하여 공격목표인 아이슬랜드 선(진현리-금성천-462고지)으로 진출하였으나 원래 진지를 회복하지 못하였다. 휴전을 앞두고 한 치의 땅이라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고지쟁탈전에서 이 일병과 장병들은 사력을 다해 싸웠다.
이 일병은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위기에 처한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전투에 임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던 이덕호 일병은 1953년 7월 17일 강원도 김화지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호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9판-3면-22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8-ㅋ-06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