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호(李德湖)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0735608
  • 전몰일자 : 19530716

공훈사항

이덕호 이등상사는 1932년 6월 20일 함경남도 안변군 배화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0월 1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덕호 이등상사가 전선에 배치될 무렵인 1950년 10월 10일 원산공격작전이 시작되었다. 이 이등상사가 소속된 연대는 시가중심부 서측방에 우뚝 솟아 있는 여왕산(355m)으로부터 북망산(143m)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최초의 공격목표를 부여받았다. 연대는 미 해병비행단의 도움을 받아 여왕산을 점령하는데 성공하였다. 11월에 들어 명천강 북쪽으로 진출한 이 이등상사와 연대병력은 18일까지 봉강을 중심으로 한 어랑천 남안 일대에 진지를 확보하고 어랑천 전투를 실시하였다.
이덕호 이등상사가 소속된 제1연대는 1951년 1월 송계리-삼척 선으로 철수한 후, 2월 3일 공격을 개시하여 2월 7일 강릉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2월 11일에 개시된 중공군의 제4차 공세에 전 전선이 밀리게 되자 다시 송계리-삼척 선으로 철수하였다.
이후 이 이등상사와 연대병력은 1952년 7월과 8월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전투에 참여해 북한군과의 공방전에서 적을 격퇴하였으나 장병들이 많이 희생되었다. 북한군은 9월 6일 맹렬한 공격준비사격을 가한 후 고지 좌우측 계곡으로 공격해 왔다. 이에 연대병력은 사력을 다해 방어했으나, 결국 수도고지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뺏고 빼앗기는 쟁탈전이 수차례 반복되면서 10월 6일부터 4일간 또다시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에 재개된 북한군의 공격을 받았으나 고지를 끝까지 사수하였다.
이덕호 이등상사와 연대병력은 1953년 5월 14~16일 금성 서남쪽 7㎞ 지점 직목동 일대에 있는 샛별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하였다. 또한, 5월 23~24 금성 서남쪽 4㎞지점에 있는 회고개 전투에서 중공군을 물리쳐 금성 돌출부 일대의 주저항선을 고수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는 수도고지-지형능선전투 등 고지쟁탈전에서 모범을 보이며 앞장서서 솔선수범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덕호 이등상사는 1953년 7월 16일 김화지구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호 이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3판-3면-324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8-ㅌ-03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