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창(李德昌)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678165
  • 전몰일자 : 19520911

공훈사항

이덕창 일병은 1928년 10월 2일 경상북도 영주군 장수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12월 27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만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덕창 일병이 전선에 투입될 무렵 1952년 초반까지 소강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당시 수도사단은 후방지역 공비들의 수가 급속도로 증가하여 후방치안의 확보가 점차 어려워지게 됨에 따라 이들을 소탕하기 위하여 1952년 2월부터 백아산, 모후산, 조계산 지구에 대한 소탕작전과 반복수색을 전개하였다. 이어 5월에는 금성-북한강 동안까지의 전선을 인수하여 동부 전선을 방어하고 있었다.
이덕창 일병과 장병들은 1952년 7월 8일 지형능선을 공격해 점령했으나 북한군의 역습을 받아 물러났다. 전선은 7월과 8월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에서 각각 한 차례씩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전개되었으며 그 뒤 8월 중순에 접어들어 다시 교착상태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9월 6일 북한군은 맹렬한 공격준비사격을 가한 후 고지 좌우측 계곡으로 공격해 왔다. 이에 이 일병을 비롯한 장병들은 최후까지 분전했으나 수도고지는 함락되었다.
9월 9일 고지탈환 임무를 부여받은 이덕창 일병과 연대는 공군의 근접지원과 포병의 지원 아래 공격을 개시하였고 고지를 향해 돌진해 고지를 점령하였다.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무수한 인명이 희생되는 소모전은 계속되었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덕창 일병은 1952년 9월 11일 김화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이 투하한 포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창 일병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0715 육)을 추서하고 유해(41묘역-2판-1564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6-ㄲ-04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