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찬(李德燦)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1386242
  • 전몰일자 : 19530714

공훈사항

이덕찬 하사는 충청남도 공주군 정안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포로교환 문제로 지루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2년 5월 초,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수색대로 배치되었다.
이덕찬 하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6월 하순, 제6사단은 국군 제2군단에 배속되어 봉화산(477고지)-교암산(770고지)을 잇는 고지군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당시 유엔사는 포로교환 문제로 교착된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공세작전을 강화하라는 작전지침을 하달했다. 이에 제2연대는 6월 12일에 방어진지 전방의 감제고지(금성천 북동쪽 A, B고지)를 공격하여 6월 15일 탈취했다. 이 고지는 피아의 방어지역을 감제할 수 있는 주요고지라 이후에도 고지쟁탈전이 수시로 벌어졌다.
제6사단은 10월 21일부로 전투지경선 조정으로 백암산 전방의 552고지-봉화산-교암산까지 확장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1953년 5월까지 3개 연대가 교대로 전방방어 및 예비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고, 진지 강화와 야간 매복, 주간 수색작전에 중점을 두었다. 이후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고, 이덕찬 하사가 소속된 수색소대는 적진에 수시로 침투하여 수집된 정보를 사단에 보고하고, 때로는 적 지휘소 등 주요시설을 습격하여 적의 공격 의지를 분쇄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쌍방 간에 7월 접어들면서 휴전협상 타결이 임박해지자, 중공군은 북쪽으로 돌출된 금성천 일대를 탈취하기 위해 7월 10일에 대규모 병력으로 공격을 했다. 당시 제6사단은 상급부대 지원없이 강력히 저항했으나, 중과부적으로 7월 14일에 큰 피해를 받고 후방의 주파령-적근산을 잇는 고지군으로 철수했다. 당시 이덕찬 하사가 소속된 수색소대는 적진으로 침투하여 적 후방을 교란하여 작전에 기여했으나, 적에게 발견되어 치열한 전투 끝에 적지에서 이탈하는 데 성공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찬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9판-2면-25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6-ㄷ-01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