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찬(이덕찬)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60393
  • 전몰일자 : 19500911

공훈사항

이덕찬 일병은 1927년 11월 6일에 경상북도 경주군 내동면 조양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초순,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직할부대인 공병대대로 배치되었다. 그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제7연대를 직접지원했다.
이덕찬 일병이 공병대대로 전입했던 8월 하순, 제7연대는 신녕 북방에서 화산탈환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공병중대는 화산탈환작전에 참가하여 장애물 개척 등 공병(工兵) 지원을 했다. 화산은 신녕 북동쪽 5km 지점에서 횡격실을 이룬 표고 828m의 고지로 신녕과 영천을 방어하는데 매우 중요한 지형이었다. 따라서 신녕이 무너지면 대구와 영천, 그리고 경주가 무너지게 되고, 더 나아가 낙동강방어선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으로 발전하게 된다. 따라서 이곳은 반드시 지켜야 할 고지였다.
이덕찬 일병이 소속된 공병중대는 제7연대 장병들과 함께 8월 29일 오전에 신녕에 도착하여 바로 공격을 개시했다. 제7연대는 먼저 중간목표인 228고지를 점령하고, 다음날 용암산을 탈취해 이를 발판으로 최종목표인 화산(828고지)을 공격했다. 공병중대는 장애물 개척을 위해 선두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지뢰지대 및 철조망 지대를 개척했으나, 적의 완강한 저항에 직면하여 총격전만 반복했다. 제7연대는 31일에 적정을 고려하여 야간공격을 했다. 그동안 완강하게 저항하던 북한군은 별다른 저항도 하지 않고 철수하여 예상외로 손쉽게 목표를 탈취했다.
북한군은 9월 2일 오후 6시를 기해 대대적인 공격작전(일명 북한군의 9월 공세)을 실시했다. 적의 공격은 계속되었고, 9월 5일에는 제7연대의 방어선이 돌파되는 위기에 처했다. 에 제7연대는 9월 10일부터 12일까지 돌파된 지역에 대해 강력한 역습으로 회복하였고, 북한군도 더는 공격을 하지 않았다. 이덕찬 일병이 소속된 공병중대는 위험을 무릅쓰고 장애물 설치 등으로 제7연대의 역습을 지원했다. 그는 9월 11일 전투에서 장애물을 설치하던 중 적의 습격으로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찬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4판-2면-24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5-ㅌ-04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