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주(李德柱)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381219
  • 전몰일자 : 19521020

공훈사항

이덕주 이등중사는 1930년 7월 30일 평안남도 성천군 쌍룡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2월 20일 육군에 입대하여 간단한 기초군사 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덕주 이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제3차 공세가 시작되면서 1951년 1월 4일 서울에서 37도선 평택까지 철수한 후 수원, 의왕 거쳐 한강 서울 재탈환작전에 참전하여 3월 15일 서울을 재탈환하였다. 중공군은 또 한 차례 서울을 점령하기 위해 4월 22일 대규모 공세를 감행하였다. 이후 12월 28일-1952년 1월 8일까지 문산 정면의 임진강 북쪽 두매리 부근에서 사단과 중공군 간에 전초진지 쟁탈전이 벌어졌다. 이 이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전초진지 쟁탈전에 투입되어 임진강 북안의 사천-백학산-사미천을 연하는 선에서 북한군과 대치하였고 달려드는 적을 상대로 수류탄과 백병전으로 격렬히 저항하여 이를 격퇴하였다.
이덕주 이등중사가 배치된 임진강 일대 전선은 장마로 인하여 7월까지 비교적 소강상태로 유지되었으나, 장마가 끝나자 전초고지에서는 다시 전투가 격화되었다. 이후 10월 1일부터 제1사단은 임진강 동서안, 역곡천 남안을 연한 주저항선을 방어하게 되었다. 이덕주 이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전초가 북한군에게 점령당한 것으로 판단하고 이를 탈환하기 위하여 다음날(10월 7일) 동고지에 대하여 역습을 실시하였으며 별다른 진척을 보지 못하였다. 10월 8일 닉키 고지에 대하여 공격을 재개하였다. 포병․ 전차․ 항공의 지원하에 닉키 고지를 재차 공격하였으나 역시 북한군의 집중적인 화력을 받아 실패하고 말았다. 다음날 새벽 1시 공격을 개시하여 105고지를 일격에 탈취한 후 텟시 고지를 공격하는 가운데 일시 적의 강력한 저항을 받아 공격이 좌절되었으나 오후 12시경 다시 공격을 재개하였다. 3일간의 혈전에도 불구하고 전초진지인 텟시, 니키 고지를 빼앗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는 위기에 처한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굳은 의지로 전투에 임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던 이덕주 이등중사는 1952년 10월 20일 고양대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의 총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주 이등중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95155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4-ㄴ-08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