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종(이덕종)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550013
  • 전몰일자 : 19510517

공훈사항

이덕종 하사는 1928년 9월 2일에 출생하였다(출생지 미상). 이 하사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이 하사는 1950년 10월경에 입대 후 제9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가 입대할 무렵,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힘입어 총반격작전으로 전환하였다. 아군은 1950년 10월 1일에 38도선을 넘어 10월 10일에는 원산을, 19일에는 평양을 점령하고 계속 북진하였다. 아군이 북으로 진격함에 따라 퇴로를 차단당한 북한군의 잔류 병력은 아군의 후방을 교란하였고, 이에 1950년 10월 15일에 창설된 국군 제3군단이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하게 되었다.
제9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1950년 11월 23일부터 12월 17일까지 전북 대둔산 및 충남지구와 경북 서부지역 공비소탕 작전을 실시했다. 이때 사단은 전북 금산군 남이면 일대와 전북 대둔산 일대에서 수백 명의 적군을 소탕하고 적의 근거지를 제거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어서 12월 31일에 시작된 중공군 제3차 공세 당시 제9사단은 1951년 1월 3일까지 사단은 원대리-서림을 잇는 방어진지에서 북한군 제10사단과 격전을 벌였다. 그 후 상급 부대명에 의거하여 영월-삼척 선으로 철수한 뒤 정선군 창리 일대에 배치되었다.
이후 중공군의 공세를 격퇴하고 3월 5일에 제1군단에 배속 전환되어 북상하는 북한군 제10사단을 강원 정선군 송계리 일대에서 포위 격멸했다. 유엔군은 1951년 4월에 접어들어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다. 제9사단은 4월 25일에 제3군단에 배속되어 강원도 인제 동남방의 한석산·가리봉 일대를 점령했다.
이어서 중공군 5월 공세 당시 제9사단은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방태산을 넘어 광원리-속사리로 철수했다.
철수를 완료한 제9사단은 5월 29일부로 미 제1군단에 배속되어 포천으로 이동해 6월 3일부터 11일까지 중공군 제165사단과 격전 끝에 고대산을 확보했으나 이 하사는 속사리 부근 전투에서 적탄에 맞아 1951년 5월 17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종 하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0-ㅂ-09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