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종(이덕종)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3701496
  • 전몰일자 : 19501125

공훈사항

이덕종 하사는 출생 일자 및 장소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에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 등을 고려하여 작성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1948년에 수립되었음에도 사회가 혼란스럽던 1949년 7월 20일, 경기도 부평의 의무학교로 입대하여 소정의 군사교육과정을 수료 후 제6사단 직할부대인 의무대로 전속되었다.
이덕종 하사가 소속된 의무소대는 춘천에 위치하며 제7연대를 직접 지원했다. 제7연대는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춘천 북방에서 3일간 저지하고, 원창고개와 횡성을 거쳐 7월 1일에 원주로 철수했다. 이후 제6사단은 7월 한 달 동안은 충주-문경-함창 축선에 적의 진출을 지연하고, 8월 1일에 낙동강방어선으로 이동하여 두 차례에 걸친 북한군의 대규모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했다.
제6사단은 9월 16일 오전 8시부로 반격하여 불과 20일만인 10월 5일에 춘천 북방의 모진교에서 38도선을 돌파했다. 이어 계속 공격하여 10월 23일에 평북 희천을 점령했다. 이곳에서 유엔군은 10월 24일에 총공세작전(일명 추수감사절 공세)를 실시했다. 당시 제7연대는 선두부대가 10월 26일에 초산을 점령했다. 그때 동림산(1165m) 기슭에서 매복 중이던 중공군(제40군)은 온정리에서 벽동 및 초산으로 진격하던 국군의 후방을 차단했고, 이에 제6사단은 10월 26일부터 중공군의 포위망을 돌파하며 철수하기 시작했다.
이덕종 하사가 소속된 의무소대는 제7연대 본부와 함께 이동하며 부상자를 치료했다. 의무소대는 철수하던 중에 중공군으로부터 몇 번의 기습공격을 받아 피해는 계속 증가했으나, 11월 1일에 도착했다. 이후 제6사단은 11월 14일에 영원-덕천으로 이동하여 국군 제2군단의 예비가 되었다.
유엔군은 11월 24일에 압록강과 두만강을 향한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실시했다. 이번에도 중공군은 산속에 은거해 있다가 유엔군의 공격 2일 차인 11월 25일 야간부터 유엔군의 후방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이덕종 일병이 소속된 의무소대는 부상자를 치료하면서 중공군의 포위망을 돌파하여 후방으로 철수해야 했다. 의무소대지만 겹겹이 쌓인 중공군의 포위망을 돌파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가 불가피했다. 이날 그는 포위망을 돌파하는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종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14면-8620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6-ㅌ-01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