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종(이덕종)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201408
  • 전몰일자 : 19501126

공훈사항

이덕종 중위는 출생 일자 및 출생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중위는 1949년 11월경 육군보병학교에 입교하여 군사훈련 후 갑종간부 제1기생으로 임관하여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중위의 입대 무렵 제8사단은 1950년 4월까지 무장공비토벌 작전을 진행하고 강릉에 주둔하고 있었다.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 기습남침을 감행했고 당시 제8사단은 지연전을 펼치며 필사적으로 방어했으나 적의 병력과 화력이 우세해 강릉지역을 상실하고 후퇴하게 되었다. 제8사단은 1950년 8월경에, 안동지역에서 영천 북방으로 이동하여 방어했다. 북한군은 1950년 8월 20일 기계, 안강 일대, 영천 북방에서 공격을 실시했다. 제8사단은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입암-영천 부근 도로를 봉쇄했지만, 북한군의 대규모 병력이 공격하여 방어진지가 돌파되었다. 이에 제8사단 장병들은 후퇴하여 사령부를 금호로 이동시키고 적의 영노동, 작상동 선에 위치한 포위망을 돌파하며 영천군을 재탈환했다.
제8사단은 1950년 9월 21일 적 1개 연대에 대하여 공격을 실시하였다. 피아간 치열한 전투 끝에 북한군은 분산되어 패주하였고 1950년 10월 3일 양평지구의 적을 격파하여 적의 저항을 받지 않고 빠른 속도로 서울에 도달했다. 10월 8일에는 연천 남방에 도달해 적 1개 대대를 격파하여 철원을 점령하였다. 10월 15일에는 곡산지구를 장악, 일대의 잔적을 소탕한 후 석봉을 향해 진격하였다.
제8사단은 끊임없이 북진하여 1950년 11월 9일 덕천을 탈환하고 구장으로 진출해 초산으로부터 철수하는 제7연대에 대한 엄호에 임하였다. 하지만 중공군의 참전으로 상황이 역전됐다. 아군은 중공군이 우측방을 우회하여 포위하려는 움직임을 포착해 중공군과의 격전이 전개되었다. 하지만 중공군의 우세한 전력에 제8사단은 점차 후퇴하였고 아군 제6사단과 임무를 교대해 군단 예비대로 소속되어 철수하였다.
이후 제8사단은 1950년 11월 27일까지 중공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또 한 번의 방어 전투를 실시했다. 중공군은 제126사단을 동부 산악지대로 우회시켜 맹산 동북쪽 애창천 계곡, 즉 사단의 배후로 침투시켰다. 하지만 수색 정찰로 이를 확인한 제8사단은 연대의 애창 방어진지를 우회하여 맹산에 집결한 중공군과 교전하였고 그 결과 중공군과 제8사단 모두 일부 병력이 분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 중위는 1950년 11월 26일 전투 중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종 중위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2판-2면-927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9-ㅎ-033)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