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종(李德鍾)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6929
  • 전몰일자 : 19500921

공훈사항

이덕종 일병은 충청남도 대덕군 근성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9월 중순경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5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35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덕종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 및 두만강으로 진격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6·25전쟁 초기에 입은 손실로 1950년 7월 5일 해체되었다가 10월 8일 재창설 후,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북진작전을 한창 진행할 때인 10월 13일부터 영남 일대의 적 패잔병 및 게릴라를 토벌하는 작전에 투입되었다. 사단은 11월 22일까지 각 연대별로 책임지역을 할당하여 작전을 실시했는데, 제35연대는 진주에 주둔하면서 지리산 동부 후방지역작전을 수행했다.
한편 육군본부는 후방지역에서의 공비토벌과 보급로 확보, 포로경비 등을 위해 1950년 11월부터 51년 4월까지 육본 직할로 14개 경비대대를 창설했다. 제2경비대대는 1950년 11월 24일 경상남도 밀양에서 공비토벌작전을 하던 제5유격대를 개편하여 창설되었다. 이때 이덕종 일병은 제2경비대대 창설요원으로 전속되었다.
제2경비대대는 육군 예비로서 경상남북도 일대에서 주보급로 경계와 적 게릴라 소탕작전을 수행 중이었다. 적 게릴라들의 유격활동은 더욱 극심해졌다. 그리고 때로는 우익 인사에 대해 테러를 하거나 민간인을 납치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1951년에 접어들어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작전으로 퇴로가 차단당한 북한군 패잔병들은 후방 산악지대에서 활동하던 지방 게릴라들과 합세하여 점차 전력을 재정비하고, 유엔군의 병참선을 차단하거나 전투근무지원시설들을 습격했다. 이들은 중공군이 남진하여 전선이 38도선으로 내려오자 전선 타격부대와 배합전술을 펼치면서 유엔군의 후방지역을 더욱 적극적으로 교란했다.
제2경비대대는 9월 21일 경상북도 영천 일대 보현산 인근에 적이 출몰했다는 신고를 받고 즉각 출동했다. 이 전투에서 이덕종 일병은 수색작전을 하다가 적 게릴라와 조우하여 교전 중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종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14판-6면-21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2-ㄹ-073)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