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종(李德鍾)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4296
  • 전몰일자 : 19500730

공훈사항

이덕종 일병은 충청남도 대덕군 기성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이 일병의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일병은 1950년 1월경 입대 후 제7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1950년 7월 5일 제7사단이 해체됨에 따라 제1연대는 수도사단에 편입되었고, 동년 10월 25일 제9사단이 창설될 때 연대의 제2대대가 제9사단으로 편입되었다. 따라서 제2대대 소속이었던 이 일병은 제9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소속된 9사단은 6·25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동두천 축선에 제1연대를, 포천 축선에 제9연대를 배치하고 있었다. 이에 북한군은 동두천 축선에 제4사단과 전차 대대를, 포천 축선에 제3사단과 제105전차여단(-)을 투입했다. 사단은 북한군의 T-34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대전차 무기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병력 면에서는 7배, 화력 면에서는 18배나 우세한 적과 전투를 벌일 수밖에 없었다.
연대는 동두천 북쪽 소요산 일대의 진지에서 북한군의 보전 협동부대를 저지하였으나, 서측으로 우회한 북한군의 위협을 받아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연대는 탄약을 재보급받지 못한 상황에서 수십 대의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의 총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이에 소요산 일대의 주저항선이 돌파되기 시작했다. 사단은 10시간에 걸친 혈전에도 불구하고 동두천 방면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1950년 6월 29일 시흥지구전투사령부가 편성되었고, 제1연대는 혼성 제7사단에 편입되어 노량진 방면에서 7월 2일까지 반복되는 적의 도하를 저지했다. 7월 5일 육군본부는 부대를 재편성하여 손실이 심한 제5·7사단을 해체했다. 연대는 수도사단에 편입되어 7월 6일부터 평택-진천-청주-보은-함창 방면으로 지연전을 펼쳤다.
연대는 7월 16일부터 청주 남방의 고은리에서 북한군 제2사단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면서 적의 전진을 지연시켰으나, 인접 미 제24사단이 충남 연기군 대평리 선에서 철수함에 따라 전선을 조정하여 함창 방면으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이 일병은 진지를 지켜내며 용감하게 싸우다 적탄에 맞아 1950년 7월 30일에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종 일병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7-ㄷ-001)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