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조(李德祚)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1705324
  • 전몰일자 : 19500730

공훈사항

이덕조 하사는 1931년 7월 28일에 출생했다(출생 장소 미상). 그는 공산세력들의 침투 및 교란으로 사회가 매우 혼란스럽던 1949년 8월 4일에 춘천의 제7연대로 입대했다. 연대는 본부를 춘천에 두고 화천 축선에 대한 방어임무를 수행했다. 연대는 북한군 침략에 대비한 방어준비를 강화하고 있었다. 장병들은 방어진지에 2∼3개소의 통나무로 만든 유개호를 마련하고 호(壕)간에는 철조망을 설치하고 그 중간에는 대인지뢰를 매설하는 등 방어준비태세를 강화했다.
북한군 제2사단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약 1시간에 걸친 공격준비사격으로 아군 방어진지를 무력화한 다음에 SU-76자주포(당시 전차로 오인)를 앞세우고 공격해 왔다. 이덕조 하사가 소속된 제7연대는 북한군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곧바로 전방지역에 투입되었다. 연대 장병들은 소양강이라는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적에게 타격을 가함으로써 6월 27일까지 적 부대의 춘천 점령을 저지했다.
제7연대는 춘천에서 피해가 커지자, 6월 27일 오후 1시부터 철수하여 원창고개를 거쳐 6월 30일에 원주로 철수했고, 7월 1일에 충주로 이동하면서 지연전을 수행했다. 그리고 7월 4일 음성으로 이동하여 국군 제1사단에 배속되어 7월 9일까지 북한군의 진출을 지연하다가 10일에 철수하여 괴산을 거쳐 문경으로 이동했다.
이덕조 하사가 소속된 제7연대는 7월 14일부터 이화령과 조령 등 문경 일대에서 방어작전을 수행했다. 7월 16일에 문경방어선이 무너지자 7월 17일에 점촌 북방의 영강방어선(옥녀봉과 413고지)을 점령하여 북한군 제1, 제13사단과 맞서 이곳에서 8일 동안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비록 7월 26일에는 3번 도로의 요충인 유곡리를 상실하는 중대한 고비를 맞게 되었지만, 국군 제1사단의 증원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북한군은 더 많은 전투력을 투입하여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계속 공격하였다. 그는 7월 30일 전투에서 용감하게 전투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조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44묘역-7판-1315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8-ㅈ-08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