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조(李德조)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143647
  • 전몰일자 : 19500920

공훈사항

이덕조 이병은 경상남도 마산시 월영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7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였다. 그 시기에 입대하였던 장정들은 기초군사훈련 과정조차도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전선에 배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이병 역시 워낙 긴급한 상황에 따라 기초군사훈련만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덕조 이병이 전선에 배치될 당시 수도사단은 제1연대와 제18연대로 편성되어 있었다. 사단은 미군이 방어하고 있던 금강선과 대평리 선이 위태롭고 또 청주 국사봉 방어선이 언제 돌파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7월 17일 보은을 거쳐 20일 안동 부근으로 이동하였다. 북한군 제12사단이 안동 북쪽에서 계속 공격해 오자, 이 이병과 장병들은 8월 1일 안동 북쪽 일대에서 국군 제8사단을 엄호하면서 낙동강 남쪽으로 철수하였다. 이덕조 이병과 장병들은 8월 3일 길안과 청송 일대에 새 방어선을 설정해 이곳으로 철수하였다. 그때 그는 진지 후방으로 침투한 북한군과 치열하게 싸웠으나 역부족으로 의성 일대로 다시 철수하였다.
북한군 제12사단은 8월 9-12일 사이에 청송-죽장-기계 축선으로 공격하여 기계와 포항을 점령하였다. 이 이병과 일부 병력은 16일 안강 북쪽 양동리 지역으로 투입되어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면서 사력을 다해 기계를 탈환하였다. 북한군의 9월 공세가 시작되자, 그는 9월 4일 경주 북방에 있는 호명리와 곤제봉, 무릉산 일대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여 북한군을 물리쳤다.
이덕조 이병이 소속된 사단은 인천상륙작전에 힘입어 16일부터 퇴각하는 북한군을 낙동강전선에서 도평-영양-춘양-영월-평창-속사리 방향으로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이 이병은 전투 경험은 많지 않았지만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신념만큼은 누구보다 투철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던 이덕조 이병은 1950년 9월 20일 영월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조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3-ㅋ-05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