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재(이덕재)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7901046
  • 전몰일자 : 19501108

공훈사항

이덕재 일병은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평장리 417번지에서 1925년 11월 21일에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일병은 1950년 7월경 입대 후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전입했을 당시 제8사단 장병들은 전쟁 초기 북한군의 공세에 1950년 8월 말까지 지연전을 펼치면서 낙동강 지역까지 후퇴하게 되었다. 이 일병이 속한 제8사단은 9월 초 북한군의 막강한 화력에 직면하여 영천 읍으로 철수하게 되었으며, 읍내에서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게 되었다. 곧이어 국군 제1사단과 제6사단의 증원부대가 도착해 전세가 역전되어, 국군이 북한군 제15사단을 포위하게 되었다. 제8사단 장병들은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한 후 9월 8일 영천군의 탈환을 시작으로, 북진과 반격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국군은 1950년 9월 16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이어 낙동강에서 총반격 작전을 실시했다. 이에 제8사단은 정비를 완료하고 1950년 9월 20일 작전에 합류해 제2군단의 우익부대로서 정면의 적을 압도하며 진격을 거듭하였다.
제8사단은 1950년 9월 21일 적 1개 연대에 대하여 공격을 실시하였다. 또한 좌측의 제21연대와 협조하여 1950년 9월 22일 오전 6시에 영마산을 점령하였다. 1950년 9월 25일 구산동 부근의 북한군을 격파한 제8사단은 의성 부근에서 저항하던 북한군에 대해 포위섬멸 작전을 실시하였다.
피아간 치열한 전투 끝에 북한군은 분산되어 패주하였다. 제8사단은 1950년 10월 3일 양평지구의 적을 격파하여 적의 저항을 받지 않고 빠른 속도로 서울에 도달했으며, 10월 8일에는 연천 남방에 도달해 적 1개 대대를 격파하여 철원을 점령하였다. 10월 15일에는 곡산지구를 장악, 일대의 잔적을 소탕한 후 석봉을 향해 진격하였다.
제8사단은 끊임없이 북진하여 1950년 11월 9일 덕천을 탈환하고 구장으로 진출해 초산으로부터 철수하는 제7연대에 대한 엄호에 임하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 일병은 1950년 11월 8일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재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9-ㅋ-02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