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재(李德宰)

  • 군별 : 육군
  • 계급 : 병장
  • 군번 : 1805583
  • 전몰일자 : 19500718

공훈사항

이덕재 병장은 강원도 홍천군 남면에서 1930년 12월 24일에 출생하였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이 병장은 1950년 1월경 입대 후 제8사단 제10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병장이 입대할 당시 제10연대는 강릉지역에서 부대 증편 중에 있었다.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 이른 새벽 38도선을 지나 국군의 기지를 공격하며 기습남침을 강행했다. 제8사단은 1950년 6월 26일과 27일에 제21연대의 증원이 축차적으로 도착함에 따라 주문진 탈환을 위한 반격을 준비했으나, 적의 공격으로 방어선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제8사단은 계획적인 철수를 단행하였다.
제8사단은 원주군으로 철수하려는 도중 적이 횡성을 점령하여 평창으로 진로를 변경하고 1950년 7월 2일 제천에 도착하여 의림국민학교에 전투지휘소를 설치해 부대를 정비하였다. 동시에 제천을 향하여 남하하는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도로상의 교량을 폭파했고, 제8사단은 집결과 정비를 위해 충주로 이동하였다.
제10연대는 1950년 7월 8일 새벽 5시를 기하여 천주봉의 적에 대하여 일제히 공격을 개시하였다. 북한군은 328고지 부근에 포진한 포의 지원 하에 완강히 저항하여 피아간의 격전이 전개되었으나, 아군 공격에 분산되어 천주봉 산중에서 아군의 포위망을 탈출하여 상괴리 방면으로 패주하였다.
이 병장과 제10연대는 7월 초에 전개된 단양 부근 전투에서 지연전을 실시하며 평창-제천-단양으로 철수했다. 그리고 단양 북쪽의 남한강에서 도하를 시도하는 북한군을 타격하여 1주일 동안 방어선을 지탱했다.
이어 죽령-영주-안동전투에서 북한군 제8사단 주력과 영주 봉현면 용암산 일대에서 접전을 전개함으로써 10일간 북한군의 진출을 지연시켰다. 6·25전쟁 초기의 절대적 전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제8사단 장병들의 감투 정신으로 국군의 철수를 보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극히 불리한 전세 가운데 이 병장은 1950년 7월 18일 적의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재 병장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0판-7면-16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6-ㄹ-07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