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일(李德一)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60775
  • 전몰일자 : 19530708

공훈사항

이덕일 이등중사는 1927년 1월 30일에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협상이 시작되던 1951년 11월 9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19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덕일 이등중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12월 중순, 제6사단은 몇 번의 공세 행동을 실시하여 백암산 전방의 교암산-송설리-송동리까지 진출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그가 전입하기 전, 공산군이 휴전협상을 지연하면서 군사력 증강에만 몰두하자, 유엔사는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각 부대에 공세행동을 명령했다. 이에 제6사단은 공산군의 공격 능력을 분쇄하고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10월 13일부터 10월 21일까지 공격하여 정면의 중공군을 격파하고, 금성천 분지를 확보했다.
제6사단은 1952년이 되면서 전선의 소강상태가 계속되자 연대별로 전방과 예비로 몇 번의 부대 교대를 했다. 이덕일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19연대는 사단 예비로 활동하다가 5월 22일에 교암산과 전초기지인 575고지를 제7연대로부터 인수했다. 중공군은 제19연대의 전초기지가 된 575고지를 눈엣가시처럼 생각하고, 5월 31일과 6월 14일에 두 차례나 공격하여 탈취했으나, 그때마다 제19연대 장병들은 역습으로 되찾았다. 이후 연대는 다시 사단 예비가 되어 노동리 일대에 위치하다가 10월 5일부로 제2연대로부터 방어진지를 인수했다. 10월 9일에 중공군으로부터 금성 부근의 주요고지를 공격받았으나 격퇴했다.
이후 전선은 1953년이 되면서 소강상태가 계속되었으며, 사단은 5월까지 3개 연대가 교대를 하면서 근무하도록 했다. 이덕일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19연대는 5월 17일부터 사단의 우측인 교암산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적정 감시와 진전 수색작전 활동을 강화했다. 그러던 그가 소속된 소대는 7월 8일에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조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분대장으로서 진두지휘하며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일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5판-8면-02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5-ㅎ-10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