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의(李德儀)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176504
  • 전몰일자 : 19520403

공훈사항

이덕의 하사는 1933년 11월 13일에 충청북도 청원군 북삼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2월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했던 1951년 2월 하순,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제6사단 제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덕의 하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4월 중순, 제6사단은 ‘중공군의 2월 공세’을 격퇴하고 반격으로 4월 중순에 사창리까지 진출했다. 이후 사단은 중공군의 4월 공세로 용문산 일대로 철수했으며, 이어 중공군의 5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하여 6월 15일에는 백암산을 좌우로 잇는 고지군까지 진격했다. 이후 유엔군과 공산군 간에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공산군이 휴전협상을 지연시키면서 군사력 증강에 몰두하자, 유엔사는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군사적 압박을 가하기로 하고 각 부대에 공세행동을 명령했다. 이에 제6사단은 유엔사 작전지침에 의거 두 차례에 걸친 공세행동을 했다. 먼저 10월 13일부터 21일까지 교암산을 탈취했고, 다음은 11월 17일과 18일 양일 간공격하여 949고지를 탈취했다. 이로써 방어진지 전방의 금성천 분지를 확보했다. 이후 사단 장병들은 방어진지 보강과 수색작전에 집중했다.
이덕의 하사가 소속된 제6사단은 1952년 1월 10일부로 미 제9군단에서 배속해제 되어 양구 남쪽으로 이동하여 수인리, 추곡리, 공리 일대에서 야외기동훈련 훈련을 했다. 그는 야외기동훈련에 열심히 임하여 전기전술을 숙달했다. 사단은 다시 3월 22일부로 미 제9군단에 재배속되어 김화, 거리실, 원남 일대로 이동하여 미 제40사단으로부터 방어진지를 인수했다.
이덕의 하사가 소속된 제7연대는 사단의 우측연대로서 765고지-교암산-442고지를 점령했다. 당시 사단 장병들은 주로 방어진지 보강 공사와 수색작전에 집중했다. 그는 1952년 4월 3일에 방어진지 전방으로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부대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의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32014 육)을 추서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5-ㄱ-01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