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응(李德應)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813

공훈사항

이덕응 순경은 1918년 12월 16일 경기도 시흥시 남면동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경기도경 안양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창녕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이 순경은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6월 28일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 주공부대는 7월 3일 한강을 도하하여 경부가도를 따라 남진하기 시작했고, 7월 3일에는 17대의 전차를 앞세워 경인가도로 진출했다. 7월 4일 적이 전차를 앞세워 파죽지세로 남진하여 수원을 점령하자 이 순경이 포함된 경기경찰 300명이 천안-수원 간 주요 보급로 경비와 철도경비 임무를 수행했다.
북한군이 남으로 진격하고 전선이 남쪽으로 이동됨에 따라 이 순경이 포함된 경기경찰 300명과 재편성부대 200명이 1개 대대로 편성되어 천안전투(7.7-7.9)에 참가했다. 병력과 화력의 열세로 아군 군경부대가 후퇴함에 따라 동 부대는 청주로 후퇴한 후 전열을 정비하여 청주전투(7.14-7.16)에 참가했다. 이 전투에서도 중과부적으로 동 부대는 다시 상주로 후퇴하여 부대를 정비한 다음 상주전투(7.22-7.31)를 치르며 적의 남진을 저지하는 데 기여했다.
북한군의 진격으로 전선이 계속 남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동 부대도 남쪽으로 후퇴를 거듭했다. 8월 4일 달성군에 도달한 동 부대는 이 지역에서 거점방어, 오열 색출, 정보수집, 철도경비, 피난민 통제·구호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던 중 창녕 방면으로 북한군이 진격함에 따라 동 부대는 창녕으로 철수했다. 8월 6일부터 8월 18일까지 북한군과 아군 군경부대 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 순경은 8월 13일 적을 격퇴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응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부부위패 04판-면-13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4-ㄹ-08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