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우(李德雨)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1901149
  • 전몰일자 : 19500625(제7사단 지휘소가 철수한 6월 26일 전사한 것으로 추정됨.)

공훈사항

이덕우 하사는 1930년 12월 15일 충청남도 보령군 미산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자유를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9년 1월 20일 제2연대 제9연대에 입대하여 복무하다, 제7사단으로 전속되어 사단 본부중대에 배치되었다. 제7사단은 적 주공방향으로 판단된 의정부 축선의 양주군 적성에서 사직리까지 47km 정면의 38도선 방어를 담당하고 있었다. 이 하사가 제7사단에 전입한 이후 북한의 남침징후가 높아짐에 따라 육군본부는 경계강화 지시를 수차례에 걸쳐 거듭 하달했고, 그는 진지공사와 훈련, 경계에 더욱 적극적으로 임했다.
사단은 6·25전쟁 발발 당시 동두천 축선에 제1연대를, 포천 축선에 제9연대를 배치하고 있었고, 본부중대는 의정부에 위치하고 있었다. 사단의 예비였던 제3연대가 1950년 6월 15일부로 수도경비사령부로 예속이 변경되고, 대신 제2사단 제25연대가 사단에 예속되었으나, 주둔지 수용시설 문제로 아직 충남 온양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사단은 예비연대가 없는 상태에서 6·25전쟁을 맞게 되었다.
반면에 북한군은 사단 정면에 주공인 제1군단의 주력을 투입했다. 북한군은 동두천 축선에 제4사단과 제203전차연대 1개 대대를, 포천 축선에 제3사단과 제105전차여단(-)을 투입했다. 사단은 북한군의 T-34 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대전차 무기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병력 면에서는 7배, 화력 면에서는 18배나 우세한 적과 전투를 벌일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이 하사가 소속된 본부중대는 의정부에 위치한 사단 지휘소 경계에 임했다. 북한군이 25일 동두천과 포천을 함락하고, 26일 의정부로 남진하자 본부중대는 사단사령부와 함께 창동선으로 철수했고, 창동선이 무너지자 28일 노량진에서 한강을 도하하여 철수했다. 이 과정에서 이 하사는 분대원을 이끌고 용감하게 앞장서서 사단 지휘소 경계에 임했다. 그는 6월 26일 지휘소가 의정부에서 창동으로 철수하는 도중에 적의 포격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우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0판-8면-22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7-ㄱ-06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