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우(李德雨)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상사
  • 군번 : 2101404
  • 전몰일자 : 19500830

공훈사항

이덕우 일등상사는 1930년 3월 10일 강원도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일제의 패망과 광복에도 불구하고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매우 혼란스러웠던 1948년 6월 5일, 충북 충주에 위치한 제6사단으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사단 직할부대인 병참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사단은 1949년 2월 22일에 원주로 이동했다. 그가 소속된 병참소대는 홍천에 위치하여 제2연대를 직접지원하고 있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기습적인 공격을 감행했을 때, 제6사단은 방어 준비가 미흡한 상황에서 신속히 방어진지로 투입되었다. 이후 경계지역전투, 주저항선 전투(어론리, 자은리, 철정리), 최후저항선전투(철정리, 한계리, 성산리)에서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반격하는 등 공세적인 행동으로 홍천 북방에서 적 부대의 진출을 3일간이나 지연시켰다. 이덕우 일등상사가 소속된 병참소대는 주로 전방의 전투병들에게 식량과 탄약을 보급하고, 장비를 정비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제2연대 장병들은 6월 29일에 홍천에서 철수하기 시작하여 지연전을 실시하며 횡성-원주를 거쳐 7월 2일에는 충주로 이동했다. 그리고 7월 5일에 충주에서 문경으로 철수하여 조령(19연대)과 이화령(2연대)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사단은 7월 16일에 문경 방어를 포기하고 문경-유곡-점촌으로 이어지는 도로 축선을 따라 지연전을 펼치며 북한군의 진출을 지연시켰다.
병참소대는 제2연대를 지원하며 8월 1일에 낙동강방어선의 용기동으로 이동하여 8월 3일에 용기동∼교안동∼307고지를 연하는 능선의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제6사단 장병들은 8월 12일까지 잘 지탱했으나, 이날 저녁 10시를 기해 북한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위천 북쪽 1∼3㎞ 지점의 감제고지인 국통산∼청노동을 연결하는 지역으로 철수했다. 이는 의성∼우보∼신녕 축선의 방어를 위한 조치이며, 더 물러설 수 없는 방어선이었다. 북한군은 8월 12일부터 전면적인 대공세(일명 ‘8월 공세’)를 실시했다.
이덕우 일등상사는 8월 13일 새벽에 적의 공격을 받고 국통산과 324고지, 169고지 일대에서 13시간 동안 치열한 격전이 벌어질 때 탄약을 수송하다가 적의 총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부산에 위치한 제5육군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았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8월 30일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우 일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1판-2면-03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81-ㅂ-07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