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우(이덕우)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7902244
  • 전몰일자 : 19501127

공훈사항

이덕우 일병은 출생 일자 및 출생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이 일병은 1950년 8월 1일에 입대 후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전입했을 당시인 1950년 8월경, 제8사단은 안동지역에서 영천 북방으로 이동하여 방어했다. 북한군은 1950년 8월 20일 기계, 안강 일대, 영천 북방에서 공격을 실시했다. 제8사단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입암-영천 부근 도로를 봉쇄했지만, 북한군의 대규모 병력이 공격하여 방어진지가 돌파되었다. 이에 제8사단 장병들은 후퇴하여 사령부를 금호로 이동시키고 적의 영노동, 작상동 선에 위치한 포위망을 돌파하며 영천군을 재탈환했다.
제8사단은 부대를 정비하고 1950년 9월 20일부터 국군의 총반격 작전에 합류해 10월 3일 서울에 도달하고 10월 8일에는 제8사단을 선두 부대로 하여 초성리 북쪽에서 38도선을 돌파해 북한군 제27사단의 일부 병력을 격퇴하면서 전곡에 진출했다. 이후 계속 진격하여 11월 9일 덕천을 탈환하고 구장으로 진출해 제7연대의 엄호를 맡았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구장동 일대에 배치되어 적의 남하를 저지했다.
제8사단은 불리한 전세에 영원으로 철수하여 맹산에 지휘소를 설치했으나 우회하는 중공군과 맞닥뜨려 교전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교전이 장기화되고 적군이 계속 증강됨에 따라, 지연전을 펼치며 후퇴할 수밖에 없어 제6사단과 임무를 교대하고 군단 예비대로 소속되어 은산으로 철수하였다.
이후 제8사단은 1950년 11월 27일까지 중공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또 한 번의 방어 전투를 실시했다. 중공군은 제126사단을 동부 산악 지대로 우회시켜 맹산 동북쪽 애창천 계곡, 즉 사단의 배후로 침투시켰다. 하지만 수색 정찰로 이를 확인한 제8사단은 연대의 애창 방어진지를 우회하여 맹산에 집결한 중공군과 교전하였고 그 결과 중공군과 제8사단 모두 일부 병력이 분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 일병은 1950년 11월 27일 전투 중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우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3판-39면-21642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9-ㅌ-03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