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우(李德雨)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6287
  • 전몰일자 : 19510628

공훈사항

이덕우 일병은 경상북도 경주군 탑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다시 청천강 선으로 철수했던 1950년 11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수색대에 배치되었다. 그가 소속된 수색대는 항상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적정을 수집하여 사단에 보고하고, 적 지휘소 및 보급소를 습격하여 적 후방을 교란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덕우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2월 중순, 제6사단은 동두천 북방의 전곡-백의리를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중공군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총공세를 감행했다. 이때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 부근에서 평택-삼척 선으로 철수했다. 당시 제6사단은 1951년 1월 1일 새벽에 중과부적으로 방어진지로부터 철수하여 2월 초순에 문막 북쪽의 판대리 일대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2월 12일 시작된 중공군의 2월 공세 시에 방어진지를 사수함으로써 돌파구 확장을 방지했다.
제6사단은 반격으로 북한강까지 진격했고, 3월 22일부터는 본격적인 반격으로 북배산-수덕산-지암리 방향으로 공격하여 4월 6일에 화악산을 탈취하고, 4월 21일에 사창리까지 진출했다. 이때 사단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4월 공세로 후방이 차단되면서 사창리전투에서 큰 피해를 받고 용문산 일대로 철수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곳에서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전초지역에서 5일간 사수하면서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했다.
제6사단은 5월 20일에 용문산 방어진지에서 즉각 공격으로 전환하자, 적들은 포위 위협을 느끼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이에 사단은 5월 25일부터 가평-춘천 사이의 산악지대인 계관산-북배산-지암리 방향으로 공격하여 28일에 구만리발전소-병풍산을 연하는 선을 확보했다. 계속 6월 5일부터는 백암산에서 화천으로 뻗어 내린 643고지-887고지-992고지-취봉 방향으로 공격하여 6월 10일에 최종목표인 취봉을 탈취하여 철원-김화 일대를 확보하고 방어로 전환했다.
이덕우 일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방어 시에도 적진에 침투하여 적정을 사단에 보고하여 사전 대비토록 했다. 그러던 중 수색소대는 6월 28일 적진에서 정보수집 활동 중에 적 부대에 발견되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우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9판-2면–17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4-ㅍ-02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