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용(李德鎔)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0190213
  • 전몰일자 : 19530630

공훈사항

이덕용 이등상사는 1924년 11월 15일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2월 24일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8연대에 배치되었다.
연대는 유엔군의 킬러작전(2. 21.~3. 6.)과 리퍼작전(3. 7.~3. 31.) 때 평창군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3월 하순경에는 인제군 현리 이대까지 진격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공세를 개시했다. 이때 연대는 공격을 전개하여 4월 중순 인제 서쪽의 관대리까지 진격했으나, 중공군 4월 공세(4. 22.~30.)에 밀려 인제 서남방의 신풍리 일대까지 후퇴했다. 5월 16일 시작된 중공군 5월 공세 때 연대는 중공군 제79·81사단의 압도적인 적의 공격에 밀려 5월 18일 풍암리까지 후퇴했다.
유엔군은 5월 말 공세로 전환했다. 이때 연대는 6월 7일부터 12일까지 양구 서북방의 군량현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교전 끝에 ‘신 캔자스선’ 상의 마석봉-504고지-757고지를 잇는 선을 확보했다. 연대는 8, 9월 동안 백석산과 그 주변의 고지들을 탈취하기 위해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으나, 북한군 제32사단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백석산 주봉 탈취에는 실패하고 9월 28일 동 임무를 제8사단에 인계 후 양구로 이동했다.
사단은 11월 20일 다시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백석산 북방의 1,090고지~931고지~암동~319고지를 있는 제8사단의 전선을 인수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1,090고지 전방의 전초진지인 크리스마스고지에서 중공군 제68군 예하 제204·202사단의 3차에 걸친 공격(1차 : 1951. 12. 25~28, 제2차 : 1952. 2. 11~13, 3차 : 1952. 10. 6~14)을 막아내며 이 고지를 지켜냈다.
사단은 1953년 5월 18일 제20사단에 전선을 인계하고, 미 제10군단 예비로 전환되어 현리 일대에서 부대정비 및 교육훈련을 한 후, 6월 17일 제20사단의 좌측 전선을 인수하여 백석산 전방의 938고지 일대의 주저항선 방어에 임했다. 공산군은 하계공세의 일환으로 6월 25일 중공군 제179사단이 938고지를 공격했고, 연대 장병들은 7월 1일까지 백병전을 펼치며 분전했으나 결국 이 고지를 탈환하는 데 실패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이등상사는 소대원을 이끌고 솔선수범하며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 6월 30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용 이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유해(장병1묘역-113판-5124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4-ㅍ-08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