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영(이덕영)

  • 군별 : 육군
  • 계급 : 소위
  • 군번 : 13707
  • 전몰일자 : 19530716

공훈사항

이덕영 소위는 1926년 10월 26일 경상남도 부산시 염주동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험난한 격동기에 청년기를 맞아 조국을 지키는 간성이 되고자 군문을 두드렸다. 그는 1948년 12월 중순 육사 제8기로 입교하여 6개월간의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1949년 5월 23일에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이후 제1사단 제11연대 소대장으로 보직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덕영 소위는 전선에 부임하여 다부동-군위 일대에서 대구를 방어하고 있었다. 이 소위가 지휘하는 연대는 9월 28일 서울 수복작전에 기여하고 9월 말 38도선에 도달하였다. 이후 10월 9일에는 38도선을 돌파해 19일 평양에 선두로 입성하는 수훈을 세웠다.
이 소위의 지휘 아래 연대병력은 1951년 12월 28일-1952년 1월 8일까지 문산 정면의 임진강 북쪽 두매리 부근에서 사단과 중공군 간에 전초진지 쟁탈전을 벌였으며 임진강 북안의 사천-백학산-사미천을 연하는 선에서 북한군과 대치하였고 달려드는 적을 상대로 수류탄과 백병전으로 격렬히 저항하여 이를 격퇴하였다.
이덕영 소위와 연대병력은 1952년 10월 1일 임진강 동서안, 역곡천 남안을 연한 주저항선을 방어하게 되었다. 이후 10월 7일 동고지에 대하여 역습을 실시하였다. 연대수색 중대 1개 소대가 텟시 고지로, 사단 수색 중대 2개 소대가 닉키 고지로 각각 진출, 8부 능선까지 도달하여 돌격을 감행하였으나, 고지상의 북한군으로부터 완강한 저항을 받아 공격이 더이상 진척되지 않았다. 11월에 접어들어 소노리의 상실로 주저항선이 북한군에게 위협받고 있었으므로 기필코 이를 탈환하고자 이 소위가 지휘하는 연대병력을 작전에 투입하였다. 공격에 앞서 12개 포병대대가 소노리 고지 일대에 포격을 집중하였으며, 유엔 공군기 B-26 6대가 목표지점을 폭격하였다.
이 소위와 연대병력은 1953년 3월 6일~3월 7일 317고지 전초기지 공방전을 전개하였으며, 6월 20일부터 9일간 박·퀸 고지 전초기지 공방전을 전개하였다. 이덕영 소위는 치열한 포격 및 개인화기로 저항한 상황에서 기관총사수와 부사수가 전사하자 기관총 진지로 달려가 기관총을 난사하였으나 후속하는 적의 수류탄 공격을 받아 1953년 7월 16일 덕천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영 소위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291179 육, 38770 육)을 추서하고 유해(15묘역-8판-2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11-ㄱ-01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