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엽(李德燁)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100179
  • 전몰일자 : 19500626

공훈사항

이덕엽 일병은 출생 기록이 없다. 그는 6·25전쟁 발발 전 38도선 일대에서 북한군의 도발이 잦았던 시기인 1950년 2월 중순경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을 받고 육군직할 보국대대(제803독립대대)로 배치되었다. 보국대대는 1949년 8월 5일 서울 영등포에서 육군 첩보과 직속으로 창설되었다. 이 부대는 북한군·정치보위부·내무서원·팔로군·38경비대의 귀순장병과 월남민 등 약 600여 명으로 편성되었다.
보국대대는 1950년 1~2월 대구에 있는 제3사단에 배속되어 청도·밀양지구 등에서 북한 유격대 토벌작전과 선무활동 및 대민 심리전을 실시했다. 대대는 5월에 대북 침투훈련을 마치고, 제6, 제7사단에 각각 1개 중대를 파견하여 북한 지역에 침투하려 했으나,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6·25전쟁 발발 당시 이덕엽 일병이 소속된 보국대대는 대대본부와 1개 중대만 서울 영등포에 남아 있었다. 전쟁이 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대에 아무런 임무가 부여되지 않자, 방원철 대대장은 육군본부로 직접 찾아가 김포지구 방어 임무를 부여 받았다. 대대는 민간 차량으로 6월 26일 오후 1시에 영등포를 출발하여 오후 3시경 통진 남쪽의 180고지에 독자로 병력 배치를 완료했다.
북한군 제6사단(-)은 개성을 점령한 뒤 6월 25일 저녁 국군 제1사단 제12연대를 추격하여 영정포, 강녕포 일대에서 도하준비를 했다. 이에 육군본부에서는 급히 김포지구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그곳으로 도하한 제1사단 제12연대 제2대대를 포함하여 기갑연대 혼성대대, 보국대대, 보병학교 후보생대대 등을 긴급 편성하여 김포반도의 한강 남안에 급편방어진지를 점령하도록 명령했다.
이로써 한강 남안에는 4개 대대가 배치되었으나, 모두 저마다 독립된 행동으로 축차적으로 투입되었고 통신 수단도 강구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인접에 어느 부대가 배치되었는지도 서로 알지 못한 채 방어에 임하고 있었으므로 조직적인 방어가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북한군 제6사단은 6월 26일 밤부터 도하 공격을 개시했고, 180고지 하안으로 침투했다.
보국대대는 치열하게 싸웠으나 자정 무렵 진지가 돌파되고 말았다. 대대는 탄약이 떨어지면서 더 이상 전투가 어려워져 본부인 영등포로 복귀했다. 이 전투에서 이덕엽 일병은 6월 26일 진지를 사수하다가 북한군 포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엽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80-ㅅ-013)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