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압(李德鴨)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상사
  • 군번 : 1200808
  • 전몰일자 : 19500626

공훈사항

이덕압 일등상사는 1925년 1월 27일 충청남도 서산군 고북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정부수립 후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조국과 자유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1949년 5월 중순경 경기도 부평에 위치한 육군직할 제1공병단에 현지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부대인 제1건설공병대대로 배치되었다.
제1공병단은 1948년 8월 19일 경기도 부평에서 제1공병대대와 제1자동차중대, 제1정비중대, 제1공병기지중대, 공병중공장중대, 경장비중대를 통합하여 창설되었고, 6·25전쟁 발발 당시는 제1건설공병대대, 제9야전공병대대, 창고중대, 제1정비중대로 편성되었다.
제1건설공병단은 육본직할 부대로 편성되었고, 주로 전방 사단과 군단의 공병 능력을 초과하는 교량・도로 건설 및 보수와 비행장 건설 및 보수 임무를 수행했다. 국군과 유엔군이 신속하게 북진함에 따라 미처 북으로 철수하지 못한 북한군 패잔병들은 지리산, 태백산맥 등지의 산속으로 도피하여 유격전을 전개했다. 이들은 유엔군 수송부대, 보급차량 및 열차, 통신시설 등에 대한 습격・파괴 활동을 지속했다. 이에 건설공병단은 기본 임무를 수행하면서 수시로 출동하여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했다.
이덕압 일등상사가 소속된 건설공병단은 전쟁이 발발했을 때에 즉각적으로 동두천 방면의 제1연대 지역에 투입되었다. 연대 정면에는 철조망과 목책 장애물은 설치되었으나 지뢰는 매설되지 않은 상태였다. 적의 기습공격에 건설공병대는 추가 장애물을 설치할 여유도 없이 제1연대 장병들과 함께 보병전투에 휩쓸렸다.
건설공병대는 적의 양익 포위전술과 전차를 앞세운 보·전·포 협동공격을 잘 막아내며 분전했으나, 절대적인 전투력의 열세로 25일 저녁 10시경에 동두천을 내주고 덕정으로 철수했다. 그는 내 손으로 조국을 지켜내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임무수행에 매진함으로써 전투부대의 원활한 철수작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덕압 일등상사는 1950년 6월 26일 파괴된 교량을 보수하려고 출동하던 중 북한군과 조우하여 교전하다가 적 총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압 일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80-ㅂ-01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