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신(이덕신)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5704301
  • 전몰일자 : 19510522

공훈사항

이덕신 일등중사는 1928년 6월 26일 경기도 인천시 내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군인으로서 자유를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9년 9월 1일 강원 홍천 지역의 38도선 방어를 하던 제6사단에 입대하여 제8연대에 배치되었다.
제8연대는 1950년 6월 20일 서울로 이동하여 수도경비사령부로 예속되었고, 이동한 지 이틀 만에 전쟁을 맞았다. 연대는 김포, 영등포 일대에서 적과 싸웠고, 진천-미호천-보은-안동 일대로 지연전을 펼치다 전투력의 소진으로 7월 23일 해체되었다. 8월 20일 연대는 제7사단 예하부대로 재창설되어 신녕지구 전투와 영천전투에서 적의 돌파를 저지하고 영천을 탈환함으로써 낙동강방어선에서의 최대 위기를 극복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국군은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연대는 경주-안동-문경-충주를 거쳐 10월 8일 양문리에서 38도선을 돌파 후, 김화-평강-율리를 거쳐 20일 북한군 잔적을 소탕하고 평양을 탈환함으로써 제1사단과 더불어 최초로 평양을 점령한 부대가 되었다. 북진을 계속한 연대는 11월 초 평안남도 개천 동북방의 비호산전투에서 중공군 제112사단의 공격을 격퇴함했으나, 묘향산 전방에서 중공군의 강력한 반격을 받고 27일 순천 일대로 철수했다. 이후 연대는 승호리-신계-시변리-연천-춘천으로 단계적으로 철수하여 12월 15일 춘천 동북방의 38도선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12월 31일 시작된 중공군 제3차 공세 때, 연대는 철수하여 영월 동북방에 배치되었다. 연대는 1월 19일부터 24일까지 영월전투에 투입되어 이를 탈환했다. 2월 11일 개시된 중공군 제4차 공세(2월 공세) 때 연대는 17~18일 치열한 전투 끝에 영월을 지켜냈다. 유엔군의 킬러작전(2. 21.~3. 6.)과 리퍼작전(3. 7.~3. 31.) 때, 연대는 평창-창동리 도로를 따라 공격하여 강원 인제군 3월 하순에는 현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다. 이때 연대는 공격을 전개하여 4월 중순 인제 서쪽의 관대리까지 진격했으나, 중공군 4월 공세(4. 22.~30.)에 밀려 인제 서남방의 신풍리 일대까지 후퇴했다.
5월 16일 중공군 5월 공세가 시작되었고, 소양강 변의 신풍리 일대에 배치된 연대는 중공군 제79·81사단의 집중공격을 받았다. 연대 장병들은 압도적인 적의 공격에 밀려 5월 18일에는 풍암리까지 후퇴하였으나, 이곳에서 적의 진출을 저지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등중사는 소대원들을 독려하며 진지를 지키다 5월 22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신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3판-4면-1250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8-ㅎ-02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