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술(李德述)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1707301
  • 전몰일자 : 19500907

공훈사항

이덕술 이병은 경상북도 대구시 칠성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던 1950년 8월 중순, 경북 신녕의 제6사단 제7연대로 현지 입대하여 단기간의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덕수 이병이 부대로 배치되었을 때인 9월 1일, 제6사단은 신녕에서 북방의 화산에 방어진지를 편성하여 진지를 강화하고 있었다. 그가 부대로 배치되기 전인 8월 초순, 제6사단은 8월 3일에 용기동 일대의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한편 북한군은 8월 5일에 낙동강을 건너 공격하였고, 10일 새벽 3시에 낙동강의 지류인 위천을 도하하여 공격했다. 이에 사단은 8월 17일에 매봉산-365고지로 철수하여 이곳에서 21일까지 적의 공격을 저지하다가 신령 북방의 고지군으로 철수하여 배수진을 쳤다. 이러한 철수 과정에서 북한군이 무혈점령한 신녕 북방의 화산(828고지)을 탈환하기로 했다.
이덕술 이병이 소속된 제7연대 장병들은 8월 29일 신녕에 도착하여 바로 공격을 개시했으나 적의 강력한 저항으로 화산를 탈취하는 데 실패했다.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 8월 31일에 야간공격하여 목표를 탈취하고, 9월 2일에는 화산 북서쪽에 위치한 725고지까지 탈환했다. 한편 북한군은 9월 2일 오후 6시를 기해 대규모 공세(일명 9월 공세)를 개시했다. 이에 제6사단은 적의 9월 공세를 맞아 화산–725고지를 잇는 방어진지에서 적의 공격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서 9월 7일부터 항공 및 포병 화력을 지원받아 적에게 심대한 피해를 주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술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0판-4면-21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0-ㅅ-00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