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술(李德述)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27134
  • 전몰일자 : 19530615

공훈사항

이덕술 이등중사는 1931년 11월 18일에 전라북도 익산군(現 익산시) 왕궁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공세로 38도선 일대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7월 10일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35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덕술 이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당시의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1951년 9월 초부터 40여 일간 양구 일대 가칠봉 전투에서 박달고개-가칠봉-서희령 전선을 확보하여 해안분지(펀치볼)확보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이후 사단은 10월 20일 이 전선을 제3사단에 인계하고 양양으로 이동하여, 1952년 1월 12일까지 인근 지역에 대한 수색정찰과 매복작전을 병행했다.
사단은 제1군단 배속으로 1월 13일에 동해안 거진으로 이동한 후, 제11사단의 전선을 인수하여 군단 우측의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방어선에 투입되었다. 전선은 7월 초순까지 소강상태가 지속되다가, 적이 7월 10일 야간 10시에 대규모 공격준비사격을 개시한 후 대거 침공을 개시하여 진지의 일부가 돌파되고 말았다. 사단은 피탈된 351고지에 역습을 전개하여 7월 13일 고지를 탈환한 후 몇 차례의 소규모 침공을 격퇴했다. 계속해서 사단은 11월 9일 적 대대 규모의 공격을 받아 한때 351고지를 상실하였으나 과감한 역습을 전개하여 재탈환에 성공했다.
1953년에 접어들면서 사단은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으며, 4월 15일 화천군 임남면 백암산 동북방 제3사단 전선을 인수하여, 949고지-973고지-883고지를 잇는 전선을 방어하게 되었다. 이덕술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35연대는 사단예비로 낡은터와 황병동에 보유하면서 주진지 및 전초진지 보강을 실시했다.
마침내 중공군 제60군 제180사단이 5월 12일에 사단의 전초기지인 689고지(텍사스고지)를 공격해 왔으나 사단은 5월 17일까지 4차례의 역습을 실시하며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적을 격퇴했다. 그 후 중공군은 6월 10일 본격적인 하계공세를 시작하면서 제60군 제180·181·203사단을 투입하여 인해전술을 펼치며 파상적인 공격을 가해 왔다. 사단은 제3사단 제22연대를 배속 받아 3차례 역습을 하면서 6월 15일까지 혈전을 거듭했으나, 적에게 주저항선을 빼앗기고 북한강 동·서안의 등대리-후동-널우골을 잇는 선까지 후퇴하여 新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덕술 이등중사는 소대원을 통제하며 예비연대 집결지로 이동 중 6월 15일 적 포격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술 이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5판-4면-27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6-ㅎ-02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