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순(李德淳)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8823391
  • 전몰일자 : 19521107

공훈사항

이덕순 하사는 1931년 10월 6일 강원도 강릉군 입출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포로교환문제 등으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2년 1월 초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당시 제2사단 제32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덕순 하사가 전선에 투입됐을 때인 1952년 1월 하순, 제2사단은 522고지-477고지-하진현을 잇는 선을 점령하고 있었다.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고, 이후 사단은 1952년 3월 10일부로 미 제9군단으로부터 배속해제 되어 사창리 일대로 이동하여 교육훈련에 집중했다. 당시 야외기동훈련(FTC, Field Training Course)은 전선의 교착으로 별다른 전투가 없는 상황에서 한국군 강화와 추후 있을지도 모르는 공산군의 공세에 대비한다는 전략적인 목적 아래 취해진 전기전술 숙달훈련이었다.
이덕순 하사가 소속된 제2사단은 6월 1일부로 미 제9군단에 재배속되어 김화 일대로 이동하여 군단 예비 임무를 수행하다가 6월 30일부로 미 제40사단 진지를 인수하여 김화 동쪽의 남대천 일대 주저항선에 배치했다. 이후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면서, 제32연대는 진지보강과 수색 및 매복작전에 집중했다. 그런데 공산군은 휴전협상을 지연하면서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었다. 이에 유엔군사령관은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공산군에게 압력을 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전 부대에 방어진지 전방지역에 대한 공격작전을 실시하도록 명령했다.
이에 제2사단은 10월 14일에 오성산 남쪽의 중공군 전초지역인 저격능선(580고지)을 탈취하기 위해 공격을 하기로 하고, 제17연대와 제32연대가 교대로 공격했다. 저격능선은 오성산을 지키는데 매우 중요한 지형으로서 공산군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곳이었다. 한편 미 제7사단은 인접지역인 삼각고지를 탈취하기 위해 공격했다.
이덕순 하사가 소속된 제32연대는 첫날 공격에 강력한 화력지원을 받아 저격능선을 탈취했다. 그는 10월 17일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경주에 위치한 제18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이곳 병원에서 의료진들에 의해 정성스런 치료를 받았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11월 7일에 사망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순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88-ㄴ-01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