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수(李德守)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8815911
  • 전몰일자 : 19521017

공훈사항

이덕수 하사는 1931년 10월 28일에 경상북도 대구 명천에서 출생하였다. 이 하사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이 하사는 1952년 4월 3일에 입대 후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9사단 제28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가 부대에 전입했을 당시 휴전회담이 진행되면서 전투는 고지 쟁탈전 양상으로 변모해 갔다. 제9사단은 1952년 전반기까지 소강상태에 들어가 아군의 관측과 기동에 제한을 주던 300고지를 기습하여 적의 방어시설을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
제9사단은 4월 5일부로 미 제9군단에 배속되어 철원 서북방의 요충지인 395고지(백마고지) 일대에서 중공군 제126사단과 대치했다. 이후 1952년 4월 19일에 사단 정면에 위치하여 아군의 관측과 기동에 제한을 주고 있는 300고지를 기습하여 적의 방어시설을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
연대는 1952년 6월 21일에 대규모의 포로획득과 더불어 북한군의 공격 기도를 분쇄하기 위해, 중공군 1개 연대병력 3,500여 명이 방어하고 있던 사단 정면의 500고지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사단은 10월 6일부터 백마고지전투에서 중공군 제38군 예하 제114·제112사단과 12차례의 백병전이 거듭되는 치열한 공방전을 펼친 끝에 적의 공격을 격퇴했다.
사단은 6·25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이 전투를 승리로 장식함으로써, 철의 삼각지 서남부에서 전술적 우위를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전투를 마친 제9사단은 10월 26일에 진지를 미 제3사단에 인계하였다.
이후 사창리에서 부대정비를 한 뒤 11월 25일에 제2사단 진지를 인수하여 김화지구의 저격능선 일대를 맡게 되었다. 이 하사는 11차 공방전에서 소대원을 이끌고 끝까지 진지를 지켜내다 적탄에 맞아 1952년 10월 17일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수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9-ㄹ-06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