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수(李德洙)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146546
  • 전몰일자 : 19511014

공훈사항

이덕수 하사는 1923년 12월 1일에 경상남도 진양군 정촌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을 준비하던 1950년 9월 15일에 대구에 설치된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동년 5월 25일에 제2사단 제17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덕수 하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때, 제2사단은 포천 및 의정부 일대에서 북한군 패잔병 소탕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38도선으로 철수할 때, 제2사단은 38도선 선상의 양문리-탑두울 선상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곳에서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시작된 중공군의 신정공세로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여 이천-제천을 거쳐 안동으로 이동하여 후방지역에서 적 게릴라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그리고 이듬해 4월 28일까지 후방지역작전을 완수하여 전방지역인 청평으로 이동하여 미 제9군단에 배속되었다.
제2사단은 이곳에서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서울 북방-마석-용문산-홍천-하진부리-대관령-강릉을 잇는 선에서 저지하고, 5월 20일을 기해 군단계획에 의거 미 제24사단의 가평 진출을 엄호하고, 5월 24일 오전 7시에 일제히 공격했다. 미 제9군단은 5월 31일까지 전곡-철원-김화-화천을 잇는 와이오밍 선을 확보했다. 이덕수 하사가 소속된 제17연대는 사창리-다목리-김화에 이르는 계곡통로의 우측 능선을 따라 공격하여 6월 14일에 적근산(1073고지)을 확보했다.
이후 사단은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한 유엔사령부의 작전지침으로 8월 2일에 방어선 전방의 감제고지인 745고지를 공격하여 탈환했다. 그러나 피아간의 뺏고 빼앗기는 고지쟁탈전은 8월 8일까지 계속되었으며, 결국 적의 역습으로 인해 다시 빼앗겼다. 이에 아군은 9월 1일부터 재차 공격을 시작하여 3일까지 격렬한 전투 끝에 고지를 탈환했다. 이후에는 전선은 소강상태에 들어갔고, 장병들은 방어진지 보강과 수색정찰 활동에 집중했다.
제2사단은 미 제9군단의 김화-금성 진공작전계획에 의거 10월 13일부터 공격을 개시했다. 이덕수 하사가 소속된 제17연대는 사단의 주공으로서 전차 중대를 배속 받아 금성을 목표로 돌진했다. 그는 10월 14일 용감하게 전투를 수행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수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8198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46묘역-8판-1072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9-ㅁ-08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