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수(李德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0744
  • 전몰일자 : 19501111

공훈사항

이덕수 일병은 경상북도 경산군 남천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 공세를 격퇴하던 1950년 9월 6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덕수 일병은 팔공산 전투를 수행하였다. 당시 북한군은 제1사단이 방어하고 있는 지역에 5개 사단을 집중해 집요한 공세를 계속하고 있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741고지-팔공산 북방 중앙선까지 담당하여 대구 북쪽의 방어진지 편성에 주력하였다. 대구 북쪽 16km에 위치한 가산(902m)은 중요한 감제고지로서 다부동-대구 간 도로와 대구까지도 감제하는 전술적으로 중요한 고지로써 가산을 탈환하여야 하였다. 사단은 기병사단과 협조하여 북한군에게 큰 타격을 주며 1950년 9월 14일에는 가산성 가장자리까지 진출하였다.
낙동강에서의 역사적인 반격작전은 1950년 9월 16일 오전 9시에 시작되었다. 아침부터 계속된 비로 예정되었던 공중지원이 취소되었으나 이덕수 일병과 연대병력은 중앙의 계곡 접근로와 동측방의 군위로 이르는 도로를 이용하여 신속히 북서쪽으로 이동하였다. 이어 9월 22일 유학산 북방의 중요지형인 천생산을 점령하고 적을 소탕한 데 이어 대구에서 상주로 나아가는 도로상 옥골까지 진출하였다.
이덕수 일병과 연대병력은 북진작전을 위해 10월 4일 후방작전지역을 인계하고 임진강 북안의 고랑포 부근으로 이동하였다. 이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10월 23~24일 안주 일대에서 청천강을 도하 한 후 25일 운산에 도착하였다. 이후 11월 청천강 남쪽의 신안주 부근에서 재정비를 완료한 이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북한군 병참선의 요충인 태천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언제나 선두에 서서 용맹을 발휘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덕수 일병은 1950년 11월 11일 신안주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1판-7면-01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2-ㅇ-05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