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수(李德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712325
  • 전몰일자 : 19501126

공훈사항

이덕수 일병은 경상북도 대구시 대명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에서 철수하여 낙동강 선으로 지연전을 수행하던 1950년 7월 15일, 경북 대구의 제25교육연대로 입대하여 단기간의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2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덕수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8월 중순, 제6사단은 낙동강방어선에서 신녕 북방의 370고지 일대에 배치되어 북한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있었다. 얼마 후 9월 초에 사단은 북한군의 대규모 공세를 맞아 국통산∼324고지를 잇는 고지군과 신령 북쪽의 화산 일대 방어진지에서 공세적인 방어로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유엔군은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격퇴한 후 반격으로 전환했다. 제6사단 장병들은 9월 16일에 공격을 개시하여 조림산 일대에서 강력히 저항하는 북한군을 격파하고, 9월 23일부터는 도망가는 북한군을 추격하여 함창-보은과 괴산-충주-원주-횡성-홍천-춘천 방향으로 진격했다.
이덕수 일병이 소속된 제2연대는 10월 4일에 춘천을 탈환하고, 10월 5일에 모진교에서 38도선을 돌파했다. 연대는 계속해서 화천-김화-금성-신고산-덕원-마식령-양덕 방향으로 진격하여 10월 19일에 성천을 점령했고, 21일에 순천-개천-희천 방향으로 진격했다.
유엔군은 10월 25일에 압록강을 향한 1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를 실시했다. 이덕수 일병이 소속된 제2연대는 10월 25일에 온정리에서 압록강 변의 벽동을 목표로 진격하던 중 동림산(1165m) 기슭에서 매복 중이던 중공군(제40군)의 공격을 받아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에 기습을 당한 제2연대는 유엔군사령부의 청천강 방어계획에 따라 10월 30일에 개천으로 집결했다. 그가 소속된 제6사단은 11월 14일에 군단과 함께 영원-덕천으로 이동하여 국군 제2군단의 예비가 되었다.
유엔군은 11월 25일에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개시했다. 당시 이덕수 일병이 소속된 제6사단은 군단의 예비로서 제7사단을 후속했다. 사단은 공격 둘째 날인 11월 26일에 전방에서 공격하던 제7사단이 중공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붕괴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중공군은 이미 제6사단 후방까지 차단하기 위해 11월 26일 새벽에 공격을 개시했다. 이날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전투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장병4묘역-404판-46553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2-ㅂ-03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