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수(李德秀)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9210485
  • 전몰일자 : 19521204

공훈사항

이덕수 상병은 1926년 5월 15일에 경상북도 월성군 산내면에서 출생하였다. 이 상병은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이 상병은 1952년 5월 20일에 입대 후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9사단 제30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상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휴전회담이 진행되면서 전투는 고지 쟁탈전 양상으로 변모해 갔다. 연대는 1952년 1월에 평강 진출로 상에 있는 신회산(343고지)을 공격하여 적의 방어시설들을 파괴하고 철수했다.
1952년 4월 5일부로 재창설된 제2군단이 금성 돌출부 지역의 전선에 투입됨에 따라, 전투지경선이 조정되어 사단은 동일부로 미 제9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이후 연대는 방어진지를 보강하면서 적정파악 및 포로획득을 위한 전투정찰과 적의 소규모 공격 및 침투를 방지하기 위한 수색·매복작전을 지속했다.
연대는 1952년 6월 21일에 대규모의 포로획득과 더불어 북한군의 공격 기도를 분쇄하기 위해, 중공군 1개 연대병력 3,500여 명이 방어하고 있던 사단 정면의 500고지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1952년 9월에 접어들어 휴전회담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고지 쟁탈전이 격화되었다. 사단은 10월 6일부터 백마고지전투에서 중공군 제38군 예하 제114·제112사단과 12차례의 백병전이 거듭되는 치열한 공방전을 펼친 끝에 마침내 적의 공격을 격퇴했다.
사단은 6·25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이 전투를 승리로 장식함으로써, 철의 삼각지 서남부에서 전술적 우위를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전투를 마친 제9사단은 10월 26일에 진지를 미 제3사단에 인계하고 사창리에서 부대정비를 한 뒤 11월 25일에 제2사단 진지를 인수하여 김화지구의 저격능선 일대를 맡게 되었다. 하지만 이 상병은 1952년 12월 4일에 매복작전 중에 적의 습격을 받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수 상병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9-ㄲ-093)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