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선(李德善)

  • 군별 : 해병
  • 계급 : 상병
  • 군번 : 9209174
  • 전몰일자 : 19510324

공훈사항

이덕선 상병은 서울시 서대문구 옥천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1950년 12월 20일 진해 해병대 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 과정을 마친 후 1951년 2월 1일 해병대 제1연대 제3대대에 배치되었다.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1951년 1월 4일 서울이 다시 함락되면서 공산군이 파죽지세로 남하하였으며, 2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오산-원주를 연하는 선에서 적을 저지하고 있었다. 중동부 지역에서는 소수의 적이 안동·영덕지구에 출몰하여 안동-영덕 간 도로를 위협하면서 지서를 습격하고 양민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제3대대는 해병대 제1연대의 일부로서 1월 30일부터 영덕지구에 투입되어 2월 11일까지 약 500명의 적을 공격하여 격퇴하고 보급로를 확보하는 데 성공하였다.
대대는 2월 13일 기동을 개시하여 삼척을 경유, 영월로 기동하여 속동지구 작전(2.19-2.27), 창리지구 수색작전(2.27-2.28)을 실시하여 커다란 전과를 올렸다. 창리지구 수색작전을 마친 대대는 창리에서 기동하여 3월 2일 정선에 집결했다. 대대는 3월 4일부터 이 지역 일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적에 대한 수색정찰을 실시하였으며, 3월 5일부터 11일까지 봉산리 전투를 수행하여 적의 준동을 약화시켰다.
한편, 전선이 북상함에 따라 홍천의 가리산을 점령하라는 임무가 해병대 제1연대에 주어졌다. 가리산은 홍천과 인제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산악으로 북진하는 국군과 유엔군이 이 곳을 장악할 경우 손쉽게 인제와 춘천에 도달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러므로 적은 이 고지에 대한 방어를 견고히 하고 있었다.
3월 19일 연대는 제2대대를 우전방, 제3대대를 좌전방, 제1대대를 예비로 하여 공격을 개시했다. 3월 22일 밤이 지나도록 전투를 벌인 제3대대는 3월 24일 고지를 완전히 점령했다. 이날 이 상병은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공격을 하다가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선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19묘역-7판-24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2-ㅅ-001)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