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삼(이덕삼)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98303
  • 전몰일자 : 19510518

공훈사항

이덕삼 일병은 1924년 1월 7일에 평안남도에서 출생했다(세부 출생 장소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4차 공세(2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한 1951년 3월 16일에 입대하여 제주도 모슬포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 후 제5사단 수색대로 배치되었다. 당시 수색대는 적진에 침투하여 적정을 수집하여 보고하거나 지휘소 습격 및 탄약고 등 주요시설을 폭파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덕삼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인제 부근 전투(4월)에서 적을 격퇴하며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선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으나, 전선조정을 목적으로 1951년 4월 24일 강원도 인제를 적에게 넘겨주었지만 적이 공격을 중지하고 급편방어로 전환함에 따라, 사단은 4월 25일 오전에 인제를 공격하여 재탈환했다.
이후 5월 초순까지 쌍방 간에 포격전만이 계속되었고 전투는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이덕삼 일병이 소속된 사단은 5월 7일에 소양강 남쪽의 부평리-청구리 일대를 목표로 공격하여 춘천 북쪽의 매봉-상수내리를 잇는 선의 진지를 점령하고 있다가 5월 16일부터 19일까지 중공군의 공격(일명 5월 공세)을 받았다.
중공군 제12군은 5월 16일 오후 4시 30분 공격준비사격에 이어서 5월 16일 오후 5시 30분이 되자 소양호 북쪽 내평리 일대에서 공격을 개시했다. 이 전투에서 부대가 포위되어 위기를 맞았으나 포위망을 탈출, 재집결 후 새로운 진지를 점령하는 형태로 계속해서 중공군과 격전을 치르면서 5월 20일 홍천 부근 풍암리 일대에 새로운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그 후 사단은 5월 26일 인제 남쪽으로 진격하다가 5월 29일에 군단 우측을 담당하여 현리 서북방 지역에서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선 진격을 위한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이덕삼 일병은 중공군 5월 공세 시 분대원과 함께 춘성 일대 적진에 침투하여 첩보 수집을 하다가 5월 18일 중공군과 조우하여 교전 중 적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삼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39면-21636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4-ㅈ-03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