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산(李德山)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89601
  • 전몰일자 : 19520909

공훈사항

이덕산 이등중사는 강원도 울진군 서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공세를 격퇴하던 시기인 1950년 9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여 간단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 제26연대에 배치되었다.
1950년 북한군의 9월 공세가 시작되자, 이덕산 이등중사는 전선에 투입되어 연대병력과 16일부터 북쪽으로 추격해 10월 1일 38도선을 돌파했고, 10일 원산을 점령하였다. 이어 북한군이 11월 말 길주에서 반격해 오자, 이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12월 14일 흥남으로 철수하면서 북한군을 저지한 후 17일 묵호항으로 해상 철수하였다.
이후 1951년 후반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고지쟁탈전은 1952년에 접어들면서 더욱 정교해지고, 그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이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1952년 6월 16일 전투지경선 조정에 따라 교암산 동측 765고지-690고지-663고지-북한강 동안 어운리 선을 주저항선으로, 575고지, 지형능선, 수도고지등에 전초를 운용 중이었다.
이덕산 이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7월 8일 새벽 1시에 621고지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북한군의 가벼운 저항을 물리치면서 일시 고지 정상을 장악하였으나, 고지 서북쪽의 적으로부터 역습을 받아 물러났다. 7월 말부터 주저항선을 정비하여 진지 강화에 주력하던 중 8월 5일 북한군은 소강상태를 깨고 수도고지로 공격을 재개하였다. 이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2차례에 걸쳐 진전에서 북한군을 격퇴하였으나, 수도고지의 전초소대가 북한군의 포격에 견디지 못하여 주진지인 663고지로 철수하고 말았다. 북한군은 그 기세를 몰아 663고지 일대로 압박해오고 있었다. 그리하여 6일부터 수도고지를 놓고 뺏고 빼앗기는 쟁탈전이 수차례 반복되었으며, 그 뒤 8월 중순에 접어들어서 다시 교착상태로 들어가게 되었다. 9월 6일부터 다시 북한군은 공격을 재개하였다.
이 이등중사는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으나 북한군의 포화에 의한 극심한 피해와 병력의 열세로 수도고지가 북한군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이덕산 이등중사는 1952년 9월 9일 매복 작전 중에 적 정찰대의 기습을 받아 김화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산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6-ㄹ-04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