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덕봉(李德奉)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10126

공훈사항

이덕봉 순경은 1923년 12월 8일 경북 고령군 서산면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서울시경 중부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의성 사곡에서 전사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비상경비총사령부는 아군이 지연전을 전개하여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기까지 경찰병력으로 하여금 오열 색출, 주보급로 경비, 철도경비, 치안유지, 국군이 배치되지 않은 지역에 투입되어 경계 및 방어작전을 수행하도록 했다.
7월 23일 미 제1기병사단이 영동 지방에서 적 게릴라부대의 습격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이에 내무부장관이 미 제8군사령관에게 요청하고, 요청내용을 미 국방부에서 승인함에 따라 1만 5천 명의 경찰이 유엔군에 배속되어 적의 게릴라 침투 방지와 소규모 전투를 병행하면서 유엔군을 지원하게 되었다. 7월 27일 대구 방위계획 수립을 위한 군경 연석회의를 개최한 후 경찰은 5개의 독립전투대대를 편성하여 유엔군과 국군부대에 배속하거나 전략거점과 중요시설을 경비토록 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전선이 북상함에 따라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경찰관서의 수복작전을 전개하여 각 도(道)경은 10월 1일 모두 수복되었고, 시·군의 경찰서도 10월 초순에 모두 수복되었다.
압록강까지 북상했던 전선이 중공군 제2차 공세로 인해 다시 남진하게 되자 1951년 1월 3일 치안국은 대구로 철수하여 32개 전투대대를 편성하여 군의 주보급로를 경비하도록 했다. 이에 서울경찰은 16개 대대를 편성하여 밀양-경산과 영천-의성 지역을 담당했고, 그 중에서 이 순경이 소속된 중부경찰서는 경북 전곡 및 건천에 배치하기 위해 제106대대로 143명, 제107대대로 139명을 편성했다.
1951년 1월 26일 경북 의성군 사곡면에 배치된 제106대대는 팔공산을 공략하려는 적 400명과 격전 끝에 적 사살 37명, 포로 2명의 전과를 거두었으나, 아군은 전사 12명, 부상 3명, 실종 7명의 손실을 입었다. 이때 이 순경은 적을 격퇴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덕봉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50판-3면-01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4-ㅎ-056호)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